[로리더] 국가가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사형을 집행하거나 옥살이를 시키고 가족에게도 빨갱이 딱지를 붙여 고통을 받게 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와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현재 뜻하지 않게 국가로부터 경제적 고통을 받는 상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에게 구제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들이 부당이득금 반환 문제로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조속히 해소하고,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책임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완전하고 효과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이었던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 사건(이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대학생들이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도한 것과 관련해 전국민주청년총학생연맹이 인민혁명당 등과 결탁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고 발표하며 관련자 1034명을 검거하고 이 중 230명을 구속했다.

이후 1975년 비상군법회의 검찰부는 지하에 흩어져 있는 인민혁명당 잔재 세력들이 1969년부터 세력을 규합해 인민혁명당을 재건하고 대구 및 서울에서 반정부 학생운동을 배후 사주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비상보통군법회의, 비상고등군법 회의를 거쳐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7명과 민청학련 관련자 1명에 대해 사형을, 16명에 대해서는 무기징역, 징역 20년과 15년 등의 형을 확정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사건 관련자들을 구속기간의 제한 없이 장기간 구금한 상태에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혹독한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며 자백을 강요하고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서를 허위로 작성토록 했다. 또한 수사와 공판과정에서 관련자들이 검찰관에게 자신들의 진술이 허위라고 주장했으나 검찰관과 수사관이 폭행과 협박해 허위자백을 부인하지 못하게 했다.

증거가 없이 허위사실이 조작됐고, 구속부터 전 수사과정과 검찰의 기소 후 공판과정에서 관련자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함은 물론 접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욱이 공판조서까지 실제 진술과 달리 변형됐다고 의심받을 상황들이 있었다. 당시 관련자들은 누명을 쓰고 구속ㆍ수감기간에 가혹한 정신적ㆍ신체적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국가는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된 다음날인 1975년 4월 9일 바로 8명의 사형을 집행했고, 이들의 최후 진술까지도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사형 집행 이후 경찰은 사형수 중 일부 시신을 탈취하거나 유족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화장 처리를 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1982년까지 7년 또는 8년 이상을 복역하면서 고문의 후유증을 앓았고, 일부는 수감 중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이후에도 보안관찰 등으로 계속 감시를 받았다. 아울러 그들의 가족들도 가장의 장기간 구속과 수감으로 인해 경제적 고통을 받았고, 특수 공안사건 전과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사회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이어왔다.

피해자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간첩”이나 “빨갱이”로 불리고, 그 부모, 배우자, 자녀나 형제자매 모두 수사기관의 감시 속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지목당해 공식, 비공식적으로 학업이나 사업,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했거나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국가는 1974년 최초 피해 발생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야 뒤늦게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활동에 착수했다. 2002년 인혁당재건위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이 있었고,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스스로 사건의 진상조사를 벌인 후 2005년 중앙정보부와 검찰은 물론 법원 등 국가체계 전체가 가동돼 발생한 피해로 결론짓고, 국민에 대한 사죄는 물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국가차원의 적절한 배상이 국가기관의 책임 하에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8명의 사형수에 대한 재심이 시작되었고, 재심 등 절차를 통해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국가폭력과 사법절차 남용에 의한 위법행위였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의 진상규명 활동과 사과, 재심을 통한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적극적인 구제조치는 없었다.

이렇게 대법원 사형선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된 8명이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다.

이에 무기징역 및 유기징역형을 받은 다른 피해자 및 유족들 역시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 77명은 2009년 1심과 2심 판결에 따라 위자료 및 지연손해금으로 총 490억원을 일부 배상금을 가지급 받았다.

국가는 상고심에서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도과와 지연손해금 기산일에 대한 항변을 했다.

그런데 2011년 1월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변경해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34년이나 늦춤으로써 피해자들이 오히려 이미 받은 위자료를 국가에 부당이득금으로 반환해야할 처지가 됐다.

대법원은 “지연손해금을 불법행위 시(1974년 4월 9일)가 아닌 변론종결일(2009년 11월 13일)부터 기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렇게 대법원이 지연손해금 기산점을 34년이나 늦춤으로써 판결이 확정된 2011년 당시에 이미 이들에게 211억원의 초과 가지급금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13년 국가정보원은 법무부, 서울고등검찰청과 협의해 피해자 77명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법원은 77명 모두 국가에 부당이익금의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 중 34명은 임의 변제하고 다른 34명은 재산이 없는 등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해 국가는 나머지 9명에 대해 소유 부동산의 경매절차를 진행하고, 일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예금채권 압류 등 절차도 진행했다.

피해자들이 국가에 반환해야 할 금액은 2017년 이 사건 진정을 제기할 시점에는 받은 금액의 95% 가량이 돼 있었고, 임의변제한 피해자들은 반환을 위해 대출을 받거나 집을 매각했기 때문에 실제 이들이 부담한 반환금은 지급받았던 금액을 초과해, 모든 피해자들이 오히려 손해배상금을 지급 받기 전보다 생활이 악화되거나 이자 부담으로 빚이 쌓여가는 형편이 됐다.

이 사건 피해자 김OO씨는 8년 이상의 수감생활 끝에 국가로부터 8억원의 배상을 받았지만 30여년 간 가족들의 생활고로 인한 빚을 갚고 난 상태라, 부당이득금을 반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진정인은 “대법원의 판결은 부당 또는 위법하고, 국가가 이를 근거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및 강제집행을 진행함으로써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생존을 위협했다”며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들의 재산에 대한 압류ㆍ경매처분을 시도하면서 또 다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은 강OO씨 등 피해자 77명을 대리해 4ㆍ9통일평화재단(이사장 문정현)에서 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진정의 원인된 사실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것으로 재판에 관한 사안이며, 국가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와 강제집행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헌법 제10조부터 제22조까지의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문재인 대통령에 권고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먼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국민은 물론 그 관할 범위의 누구나 생명과 신체의 온전함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유지되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상기시켰다.

인권위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국가가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및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확인된 이상, 국가는 조직적으로 반인권적 탄압행위를 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가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입은 피해에 대해서 신속하고 적극적인 구제조치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그러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오랜 기간 의혹 제기와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29년 만에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이어 국가정보원이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중앙정보부 등의 수사과정 전반과 언론발표, 재판과정에서의 구체적인 불법행위들을 2005년 확인했음에도, 1974년과 1975년 당시 형사절차상 불법의 실체를 확인한 것 외에는 정부의 어떠한 행정기관도 사건 관련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한 피해의 구체적 상황과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히려 국가는 피해자들이 2007년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불법체포가 이루어진 시점은 1974년이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인 5년이 경과했고, 만일 피해자들이 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 해도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이 있었을 때 그 장애가 소멸했으므로 그로부터 3년이 훨씬 도과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이미 시효 소멸했다고 항변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결국 국가가 피해구제에 대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들은 유죄판결의 부당함에 이어 그로 인한 피해 역시 스스로 주장하며 다시 한 번 법원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결과에 대해서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것으로 적절성 여부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나, 재판결과의 이행만으로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국가책임이 온전하게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지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며 “재판이 법적인 피해구제의 한 방안인 점은 분명하나, 민사소송이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 중에서 인용될 수 있는 내용과 범위를 결정하는 소극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면, 피해에 상응하는 배상 등의 구제조치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국가의 피해구제 책임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가는 스스로 조작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을 일으키고서도 조직적 은폐 시도를 지속했고, 구제조치를 외면했음은 물론, 피해당사자와 그 가족들에 대해 직간접적인 불이익 조치를 자행 또는 방조했다”며 “그 동안 피해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이 감내한 경제적ㆍ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가가 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위와 같이 누적돼온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의 책임을 외면한 채 강제집행의 방법으로 피해자들에게 경제적 고통을 가하는 현 상황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당사자였던 국가가 올바르게 반성하는 모습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형평과 정의에도 현저히 반한다”며 “국가는 지금이라도 피해 회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구제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국가는 피해의 실체를 파악해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과 배상 문제를 재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그 권한을 위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에 대통령에게,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이 부당이득금 반환 문제로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조속히 해소하고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책임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완전하고 효과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본 사안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관한 것으로 대법원 판결문, 인권위 결정문, 피해자들이 현재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리더 신혜정 기자 shin@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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