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민사소송 등 과정에서 수어통역 지원 비용을 신청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장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사법 절차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청각장애 2급인 진정인은 OO법원에서 가사사건으로 소송 진행 중에 세 차례에 걸쳐 법원에 청각장애인 수어통역 지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가사사건의 경우 소송비용이 자비부담원칙이며,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유로 수어통역을 지원 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7월 법원에서 수어통역 지원에 따른 예납 명령을 해 비용을 납부해야만 했다.

진정인은 “청각장애인이 재판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수어통역 지원이 필요함에도, 이를 자비 부담 원칙으로 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소송비용 국가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형사소송과는 달리, 민사소송ㆍ가사소송의 경우 소요비용은 당사자 부담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어 통역 소요 비용은 신청한 당사자가 예납해야 하며,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고도 답했다.

그러나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위원장 정상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4항에 의거, 재판 진행 과정에서 수어통역 등 지원은 단순히 해당 편의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 뿐 아니라, 장애인에게 비용부담 없이 편의를 제공해 실질적인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봤다.

인권위는 “증인이나 감정인에 대한 비용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히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 신청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보기 어렵다”며 “그러나 수어통역비와 같이 비장애인에게는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장애인에게 부담하게 한다면 이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의 사법 절차 및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민사소송 등에서 수어통역 지원 비용을 신청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청각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사법절차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법원은 청각장애인에게 비용부담을 지우지 않고 수어통역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대법원장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민사소송 및 가사소송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 또는 ‘소송구조제도의 운영에 관한 예규’ 개정 등을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로리더 표성연 기자 desk@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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