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변호사들은 태아를 임신한 임부 및 임부의 배우자들이다.

청구인들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부, 임부의 가족 등에게 고지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20조 제2항으로 인해 임신 32주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었다”며 “이에 의료법 조항이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의료법 제20조(태아 성 감별 행위 등 금지) ②항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8일 의료법 제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먼저 “심판대상조항은 의료인에게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 고지를 금지해 낙태, 특히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방지함으로써 성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것이므로 그 목적의 정당성을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성비불균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당시에는, 형법상 낙태죄만 가지고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방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봐 태아의 성 감별 및 고지 자체에 낙태의 개연성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그러나 심판대상 조항으로 개정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국민의 가치관 및 의식의 변화로 전통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 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는 모두 자연성비의 정상범위 내로서, 셋째아 이상도 자연성비의 정상범위에 도달한 2014년부터는 성별과 관련해 인위적인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시기를 살펴보면 의료인이 초음파로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한 최소 임신주수인 16주를 기준으로는 97.7%, 고위험군 산모로 산전 기형아 검사를 하여 태아의 유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 임신주수인 10주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89.8%가 그 이전에 인공임신중절을 했으므로, 90% 이상은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인공임신중절을 했다.

임신 10주 이후에 인공임신중절을 한 경우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조사했지만, 태아성감별 가능 시기를 기다린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태아의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판대상조항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의료인으로부터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총장의 사실조회 회신에 따르면 심판대상 조항을 위반한 경우 적용되는 형사처벌 조항에 따라 검찰 고발 또는 송치된 건수 및 기소 건수는 10년간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심판대상조항이 행위규제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사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헌재는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며 “심판대상조항은 낙태를 유발시킨다는 인과관계조차 명확치 않은 태아의 성별고지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성별을 이유로 낙태를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단지 태아의 성별 정보를 알고 싶을 뿐인 부모에게 임신 32주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이거나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법수단으로서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있을 수 있다는 아주 예외적인 사정만으로, 모든 부모에게 임신 32주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 정보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며 “이는 태아의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방지라는 입법목적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낙태로 나아갈 의도가 없는 부모까지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과도한 입법이므로, 필요최소한도를 넘어 부모의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며 “이에 따라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했고, 결국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 이종석, 이은애, 김형두 재판관 헌법불합치 의견

세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법정의견에서 살핀 바와 같이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면서도 헌법불합치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관들은 “현재 우리나라는 전통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상당히 쇠퇴했지만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고, 남아선호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의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다”며 “출산 기피 풍조가 만연하고,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만약 태아의 성별고지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면 성별 선호에 따른 자녀 계획이 인공임신중절의 이유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고 봤다.

재판관들은 “따라서 국가가 막중한 책임을 부담하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 태아의 성별고지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며 “하지만 이는 부모로서 당연히 누리는 천부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인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그 제한은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태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비록 과거보다 그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이러한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태아의 성별고지를 제한할 필요성은 계속 존재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그런데 법정의견과 같이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잠정적으로 적용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고, 입법자로 하여금 낙태죄에 관한 형법 개정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입법을 하도록 함으로써, 태아의 부모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에 관하여 법적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정의 의의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성별을 원인으로 한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낙태를 유발시킨다는 인과관계조차 명확치 않은 태아의 성별고지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낙태로 나아갈 의도가 없이 부모로서 가지는 권리에 따라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은 부모에게도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게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봐 위헌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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