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HD현대건설기계 사내협력업체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에 대해 불법파견 사실을 부인하며 사내하청을 통한 불법착취를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소송과 판결을 통해 HD현대건설기계는 사내 협력업체들의 사무실과 작업공간을 모두 공장 내부에 두고 있었고, 작업에 필요한 것들은 무상으로 지급하는 등 사내협력업체들이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건설기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대건설기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HD현대건설기계는 굴착기 같은 건설용 기계장비, 산업용 운반기계 및 관련 부품의 제조판매 회사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03년부터 사내 협력업체들과 도급계약을 체결해 왔다.

A씨 등은 HD현대건설기계 사내 협력업체에 입사해 굴착기 제작공정에 투입돼 동일한 작업을 수행했다.

HD현대건설기계의 사내협력업체 중 마지막으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서진이엔지는 2019년 11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HD현대건설기계에 도급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그 후로도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2020년 8월 폐업했다.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폐업 이후 4년째 천막농성을 이어오며, 원청인 HD현대건설기계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A씨는 HD현대건설기계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은 2020년 12월 “HD현대건설기계가 파견법을 위반했으므로 서진이엔지 소속 근로자 57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시정지시를 했다.

또 울산지방검찰청은 2022년 6월 서진이엔지 대표이사와 당시 HD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전무 등을 파견법 위반죄로 기소해 현재 울산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이에 A씨 등은 2021년 3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년 이상 근로한 협력업체 직원의 고용 ▲2년 미만 근로한 협력업체 직원에 대한 직접고용 의사표시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파견법을 위반해 차별처우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지연손해금 등을 청구했다.

현대건설기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대건설기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이들은 “형식적으로 사내 협력업체의 근로자로 근무해 왔으나, 실질적으로는 HD현대건설기계의 지휘ㆍ감독 아래 기계장비 생산업무에 종사해 와 HD현대건설기계와 사내 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다.

반면 HD현대건설기계는 “원고들에게 업무수행에 관한 지휘ㆍ명령을 한 바 없고, 사내협력업체와의 도급계약은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하지만 법원은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A씨 등의 손을 들어 줬다.

◆ 서울중앙지법, HD현대건설기계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 ‘직원’ 인정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재판장 정회일 부장판사)는 12월 5일 HD현대건설기계의 사내협력업체 직원 A씨 등 27명이 HD현대건설기계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 등 2명에 대해 “이 사건 기본계약이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고, 2003년 5월 사내협력업체에 입사해 굴착기 제작공정에 투입된 사실이 인정할 수 있어 그로부터 2년이 경과한 2005년 5월부터 피고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 근로자지위에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원고 25명에 대해서도 HD현대건설기계가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한다”며 ‘고용 의사표시를 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의 임금 또는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HD현대건설기계가 원고들 각 5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것을 명했다.

HD현대건설기계 홈페이지
HD현대건설기계 홈페이지

재판부는 먼저 HD현대건설기계가 원고들에게 업무수행에 관한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했는지 여부를 살폈다.

공사도급 기본계약서에는 사내협력업체로 하여금 HD현대건설기계가 설계도서, 작업시방서, 기타 공사수행 관련 표준문서를 제시한 경우 그 내용에 따라 공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HD현대건설기계는 사내협력업체에 작업표준서와 제조공정도, 표준작업지도서 등을 전달했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그 내용을 준수해 수급업무를 이행했다”며 “작업표준서 등을 보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해야 하는 작업의 순서와 방식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원고들을 포함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업무수행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휘ㆍ명령을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이를 단지 사내협력업체가 완성해야 하는 일의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기준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각 사내협력업체의 작업현장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작업실적 관리시스템(MES시스템)이 실행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은 해당 현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부품의 종류, 기종, 공정단계와 함께 생산 중인 기계장비의 모델명, 조립공정 투입 예정일, 조립공정에 투입될 순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건설기계는 “MES시스템은 생산계획을 전달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MES시스템을 통한 생산계획의 전달은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의 지시로 기능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각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는 현장에 MES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모니터가 다수 설치돼 있어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은 직접 MES시스템에 등록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바 도급계약서에서 사용자나 현장대리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일의 완성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HS현대건설기계는 작업표준서와 제조공정도, 표준작업지도서 등을 통해 각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이 수행해야 하는 작업의 구체적인 방식을 정해둔 MES시스템을 통해 작업대상 및 작업순서를 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작업내용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 “HD현대건설기계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작업 지휘ㆍ명령”

HD현대건설기계의 직원들은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각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로부터 작업현황과 작업 중 발생한 문제점 등을 보고받고, 협력업체가 수행하는 작업의 순서, 방법 등에 관해 지시했다.

이에 대해 HD현대건설기계는 “직원들은 서진이엔지의 현장대리인으로 선임된 사람에게 도급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장대리인이 HD현대건설기계 직원들과 주고받은 대화나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 직원들은 단순히 일의 완성에 필요한 기준을 전달하거나, 서진이엔지의 작업결과물에 발생한 결함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작업의 순사나 수행방법, 결함의 시정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이 HD현대건설기계가 각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에게 작업순서, 방법 등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과 비교해, 사내협력업체들이 현장대리인 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작업에 관한 지휘ㆍ명령을 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HD현대건설기계 직원 복지 혜택 제공”

이와 함께 재판부는 “HD현대건설기계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축구 관람 행사에 초대했으며, 위험성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했고, 또한 사내협력업체 춘계단합대회와 관련해 근로자 1인당 1만 5000원씩을 지원금으로 지급했으며, 사내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자녀들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기도 하는 등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도 피고의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일부나마 제공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 역시 HD현대건설기계 직원들과 함께 하나의 작업집단을 구성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 “HD현대건설기계가 지원…사내협력업체들 독자적인 사업주로서의 실체도 없어”

아울러 재판부는 “각 사내협력업체 사무실과 작업공간은 모두 HD현대건설기계의 공장 내부에 위치하고 있고, 피고는 사내협력업체에게 작업에 필요한 용접기 등을 무상으로 임대했으며, 각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착용하는 피복, 보호장구 등의 소모품도 모두 제공했다”며 “각 사내협력업체는 작업 기본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물적시설이나 고정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어 “각 사내협력업체가 사내협력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참가했다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고, 그 밖에 각 사내협력업체가 독자적인 사업주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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