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근로자, 2차 소송에서도 ‘일본 기업 배상’ 인정(대법원 2023년 12월 21일. 선고 2018다 303653 판결 및 2019다17485 판결)

사례)

원고 등은 1944년경부터 1945년경 사이에 구 미쓰비시중공업 운영 사업장(2018다303653 사건) 및 1942년경부터 1945년경 사이에 구 일본제철 운영 제철소 운영 제철소(2019다17485 사건)에 동원되어 강제노동을 하였다.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

1심은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원고들에게 일부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그 결과 2018다303653 사건의 경우 원고들 별로 1억 원, 1억 2천만 원, 1억 5천만 원을, 2019다17485 사건에서는 원고들에게 각 1억 원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가 항소하였으나, 원심은 ‘법령의 해석ㆍ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확정하고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그때부터 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원고 등과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가 상고한 것이다.

​관련하여, 구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었던 망 정OO 등은 2000년 5월 1일 부산지법에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1심은 2007년 2월 2일 청구기각판결, 항소심은 2009년 2월 3일 항소기각판결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대하여 파기환송하였다[대법원 2012월 5월 24일. 선고 2009다22549 판결(2012년 판결)]. 2013년 7월 30일. 환송 후 원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피고가 재상고하였고, 대법원이 상고 기각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8년 11월 29일. 선고 2013다67587 판결).

한편, 대법원은 다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대법원 2012년 5월 24일. 선고 2009다68620 판결 (파기환송)]의 재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는데[대법원 2018년 10월 30일.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위 대법원 2013다67587 판결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은 취지이다.

해설)

위 사례의 경우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소멸시효 남용 사유로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를 언제로 볼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채권자에게 권리의 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에도 대법원이 이에 관하여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가능하다는 법률적 판단을 내렸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시점 이후에는 그러한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고,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선고한 2009다68620 판결 및 2009다22549 판결(2012년 판결)에서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러나 2012년 판결 선고 이후에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 등에 관하여 여전히 국내외에서 논란이 계속되었고, 청구권 협정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과거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 등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되었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였으며, 피고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배상을 거부하였음.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남은 사법절차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고, 2012년 판결은 파기환송 취지의 판결로서 그로써 해당 사건 당사자들의 권리가 확정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었고, 또한 환송판결의 기속력도 환송 후 재판에서 새로 제출되는 주장과 증거에 따라 미치지 않을 수도 있었음.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 등과 같은 피해자들로서는 2012년 판결 선고 이후에도 개별적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여전히 의구심을 가질 수 있었으며, 대법원은 2012년 판결 중 2009다68620 사건의 재상고심인 2013다61381 사건 판결(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후 같은 취지의 환송 후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으며, 이로써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으므로 결국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로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확실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그 상속인인 원고들에게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고를 상대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23년 12월 21일. 선고 2018다 303653 판결 및 2019다17485 판결)고 판결하였다.

위 판결에서는, 대한민국은 이 사건의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대한민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한 원심 판단에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고, 구 미쓰비시중공업/구 일본제철과 피고가 그 실질에 있어 동일성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어 원고 등이 구 미쓰비시중공업/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 배상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한 원심 판단에 외국법인의 동일성 판단 기준 및 외국법 적용에 있어서의 공서양속 위반 여부에 관한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 없으며,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 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 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원심 판단에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 및 효력에 관한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과거 대법원 2018년 10월 30일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채무자의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년 9월 8일.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는 소멸시효 원용 가능성에 대한 법리는 대법원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위 판결도 해당 법리를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과 강제노역에 동원된 근로자들이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느냐가 오래전부터 논의 돼 왔고 일부는 일본법원에 제소해 패소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일본정부는 한국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사실도 없고, 일본기업의 경우에도 한국인 근로자에게 노동을 강요시킨 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협정)’에 의해서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이 한국의 개별 국민에 대하여 더 이상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한국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발뺌해 왔다. 이에 대하여 위안부로 동원됐던 사람들과 일본기업의 강제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일본국과 일본기업들이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폭압적 행위로 우리 국민들이 피해를 입은 경우 한국과 일본의 청구권협상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느냐가 국민들의 관심사였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일제 강점기 일본국의 위법행위를 인정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에서와 같이 그동안 일본국이 끊임없이 부인해 왔던 일본국이나 일본기업의 위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청구권협상의 효력범위를 분명히 한 것이다. 향후 같은 내용의 소제기에도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펼쳐진 법리가 그대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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