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의 판례 해설]

폭행ㆍ협박에 의한 강제추행죄에서 ‘폭행ㆍ협박’의 의미를 항거불능의 상태에 이르는 경우로 제한해야 하는지(대법원 2023년 9월 21일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피고인은 2014년 8월 15일 19:23경 피고인의 주거지 방안에서 4촌 친족관계에 있는 피해자(여, 15세)에게 “내 것 좀 만져줄 수 있느냐?”며 피해자의 왼손을 잡아 피고인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으나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며 일어나 집에 가겠다고 하자,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느냐?”며 피해자를 양팔로 끌어안은 다음 피해자를 침대에 쓰러뜨려 피해자의 위에 올라타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피해자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며 피고인의 오른손을 피해자의 상의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어 속옷을 걷어 올려 왼쪽 가슴을 약 30초 동안 만지고 피해자를 끌어안고 자세를 바꾸어 피해자가 피고인의 몸에 수 차례 닿게 하였으며,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큰일 난다.”며 팔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방문을 나가려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약 1분 동안 끌어안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제1심(보통군사법원)은 성폭력처벌법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으로 유죄를 인정하면서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그 이유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고,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추행행위를 하였다는 점을 들고 있다.

피고인이 이에 항소하였던 바, 검사는 항소심(원심)에서 사실관계는 그대로 둔 채 적용법조만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제3항, 형법 제298조 위반(아동ㆍ청소년 위력 추행)’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였다.

원심(고등군사법원 2018년 8월 10월 선고)은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주위적 공소사실인 성폭력처벌법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은 무죄를 선고하였고, 다만 (공소장변경으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아청법위반(위계 등 추행)]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하면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였다.

원심이 들고 있는 판결 이유는 주위적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인정되나 피고인이 한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피해자를 침대에 눕히거나 양팔로 끌어안은 행위 등을 할 때 피해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피고인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한 이유는 피고인이 ‘내 것 좀 만져달라, 한번만 안아달라, 한번 만져봐도 되냐’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에 해당하고, 추행의 고의도 인정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하여 검사가 상고하였다.

해설)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함으로써(형법 제297조),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함으로써(형법 제298조) 성립하는 범죄이다. 먼저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 있어서 폭행 또는 협박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①폭행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형으로, 이 경우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 강약을 불문하고 곧바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팔로 힘껏 껴안고 강제로 두 차례 입을 맞추어 그녀를 강제추행한 경우(대법원 1983. 6. 28. 선고 83도399 판결), 피고인이 피해자(35세의 유부녀) 및 공소외인과 노래를 부르며 놀던 중 공소외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피해자를 뒤에서 껴안고 부루스를 추면서 피해자의 유방을 진 행위(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직장 상사가 등 뒤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여 어깨를 주무른 경우(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4도52 판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②폭행 또는 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그 수단으로 행해진 폭행ㆍ협박 선행형으로, 이 경우에는 폭행 또는 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해 왔다(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805 판결).

이에 따라 피고인이 피해자 갑(여, 48세)에게 욕설을 하면서 자신의 바지를 벗어 성기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강제추행한 경우(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805 판결), 피고인이 컨트리클럽의 회장인 위 공소외인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신분상의 불이익을 가할 것처럼 협박하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목 뒤로 팔을 감아 돌림으로써 얼굴이나 상체가 밀착되어 서로 포옹하는 것과 같은 신체접촉이 있게 되는 이른바 러브샷을 한 경우(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050 판결)에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였지만, 피고인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해자를 칼로 위협하는 등의 방법으로 꼼짝하지 못하도록 하여 자신의 실력적인 지배하에 둔 다음 자위행위 모습을 보여준 행위(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13716 판결)의 경우에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폭행ㆍ협박 선행형의 경우 폭행 또는 협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학설이 대립되었고, 우리 다수설과 판례는 전통적으로는 반항이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의 폭행ㆍ협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먼저 4가지 유형을 살펴보면, ①가장 넓은 의미의 폭행은 사람, 물건에 대한 모든 유형력의 행사로 형법 제87조의 내란죄에서 말하는 폭행을, ②넓은 의미의 폭행은 사람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 유형력의 행사로 형법 제136조의 공무집행방해죄를, ③좁은 의미의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형법 제260조의 폭행죄를, ④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은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로 반한불능은 형법 제333조의 강도죄, 반항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로는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 반항이 곤란할 정도는 강제추행죄의 성립 요건으로 해석해 왔다.

협박의 경우에도 3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①넓은 의미의 협박은 공포심을 일으킬 목적으로 사람에게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 일체를 말하면서 형법 제87조의 내란죄를, ②좁은 의미의 협박은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 고지로 형법 제283조의 협박죄를, ③가장 좁은 의미의 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해악 고지로, 반항 불능은 형법 제333조 강도죄를, 반항의 현저한 곤란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반항 곤란은 강제추행죄 성립 요건이라고 설명해 왔다.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례의 기본적 입장은 “강간죄나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ㆍ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 그 폭행ㆍ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ㆍ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가해자가 폭행을 수반함이 없이 오직 협박만을 수단으로 피해자를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에도 그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강간죄)이거나 또는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강제추행죄)이면 강간죄 또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고, 협박과 간음 또는 추행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더라도 협박에 의하여 간음 또는 추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달리 볼 것은 아니다. 협박의 경위, 가해자 및 피해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피해자와의 관계, 간음 또는 추행 당시와 그 후의 정황, 그 협박이 피해자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의 내용과 정도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면서, 협박이 피해자를 단순히 외포시킨 정도를 넘어 적어도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는 이유로,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 (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6도5979 판결)”고 본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성범죄에 대하여 사회적 인식이 변화돼 처벌이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특별법을 통해서 성범죄의 성립요건이 완화되고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판례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폭행·협박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정도로 억압의 정도가 강했는지 여부를 그 내용과 정도뿐만 아니라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전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까지의 판례 기조를 유지하는데 대하여,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간음행위가 언제나 강한 정도의 폭행·협박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폭행의 정도가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간음에 동의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판례의 입장이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위 사례의 이른바 폭행ㆍ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위와 같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제한 해석한 종래의 판례 법리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에 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범죄구성요건과 보호법익, 종래의 판례 법리의 문제점,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면서,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하면서 원심판결 파기하고 원심법원(고등군사법원)과 동등한 관할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 이송하였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

위와 같은 다수의견에 대하여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한 ‘종래의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하나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므로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데,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강제추행죄의 폭행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파기이송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이 있다.

​우리 대법원은 1983년부터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해석해 왔다(대법원 1983. 6. 28. 선고 83도399판결). 그런데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인해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섬범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경향으로 흐르면서도 40여년 간 유지돼 왔던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이라는 폭행ㆍ협박의 정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엄격하게 항거불능이나 항거 곤란에 이르지 않는 경우에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강제추행이나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결국 대법원은 과거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강제추행죄 등의 성립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느끼게 돼 ‘강제추행죄 등의 성립을 위해서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이라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과거의 판례’를 변경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회의 법의식이 변화하는 경우 법원의 판례도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법원의 판결이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괴리되는 경우에는 올바른 법해석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성범죄가 늘어나면서(정확하게는 피해자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경우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지만) 과거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위 사례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를 반영해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죄의 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죄의 협박)’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강제추행죄나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불가피한 해석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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