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으로 심한 부담감을 느끼다 이직했는데, 옮긴 회사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게 되자 스트레스가 심해져 우울장애를 겪다가 집에서 극단적 선택한 사건에서 보험사는 면책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급성 중증 우울증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

부산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중 A씨는 남편(B)을 피보험자로 해서 2014년 메리츠화재해상보험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B씨는 2021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스카프로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했다.

A씨는 메리츠화재보험에 남편의 상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사가 거부하자,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 대표)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소송에 임했다.

A씨는 “남편은 10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근무지가 변경돼 심한 불안감과 부담감을 느끼던 중 이직했는데, 옮긴 회사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게 되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됐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병원 치료와 바깥출입을 거부하다가 정신건강이 더욱 악화돼 결국 사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A씨는 “그렇다면 이 사고는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상해사망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고,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은 “이 사고는 망인의 고의에 의한 것으로서 보험계약이 보상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고, 망인이 심신상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보험계약이 정한 면책사유도 존재한다”며 “따라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이 사건 보험계약 제5조(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신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사유 규정을 뒀다.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도 있다.

부산지방법원 제16민사단독 이은성 판사는 4월 19일 중증 우울장애를 겪다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망인의 아내가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는 원고에게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A) 승소 판결했다.

이은성 판사는 “망인은 사고 당시 급성 중증 우울증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고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상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내성적인 성격인 B씨는 섬유공장에서 10년을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다시 위 회사에 재입사해 부장 직책까지 올랐으나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으로 20년간 해왔던 일과 다른 업무를 갑작스럽게 담당하게 되면서 바뀐 업무에 쉽사리 적용하지 못하고 불안, 초조, 불면 증상 등을 겪다가 결국 퇴사했다. 이후 다른 회사로 이직했는데, 그 회사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퇴사했다.

B씨는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으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 이후 아내 등에게 ‘나보고 나가라는 소리 같다’, ‘옮긴 부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왕따시키고 뒤에서 욕하는 것 같다’, ‘너무 불안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고,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체중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B씨는 2021년 1월말 가슴 두근거림, 숨 막히는 느낌, 불면, 불안, 우울, 미래에 대한 막연함, 두려움, distress 증상을 호소하다가, 2021년 3월 17일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에피소드,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을 처방받았다.

B씨는 2주 뒤인 2021년 4월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귀가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은성 판사는 “사고 당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망인이 작성한 이력서가 발견된 점, 극단적 선택에 필요한 도구를 미리 준비해 둔 게 아닌 점 등에 비춰 보면 망인은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로 인해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사고는 보험계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 발생했고, 보험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A씨이며, 이 보험계약 외에 다수의 보험계약이 체결된 상태도 아니었던 점도 참작했다.

망인(B)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망인의 정신건강의학과 내원 시점과 자살 시점 사이의 기간, 우울장애 발생의 원인 등에 비춰 볼 때 우울장애가 급성, 중증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고, 우울증은 자살의 위험요인이며, 이러헌 우울장애의 급격한 악화가 망인의 자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은성 판사는 이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고, 그리고 소송비용도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한 손해사정인은 “이번 판결은 우울증으로 병원에 한 번 갔는데, 법원이 심신상실로 인정한 사안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