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회의장 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 야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이 결정은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관한 최초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줄곧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결정을 해왔다. 먼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인근(2003년 10월)에서의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특히 국회의사당 인근(2018년 5월 31일), 국무총리 공관 인근(2018년 6월 28일), 각급 법원 인근(2018년 7월 26일), 대통령 관저 인근(2022년 12월 22일)에서의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2월 국회의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인 공관 정문 앞에서 여성 2명과 확성기를 나눠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여성들과 누워 피켓을 들며 경찰의 장소 이동 요청에 불응하는 등으로 옥외집회에 참가했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A씨는 재판 계속 중 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 제2호 중 ‘국회의장 공관’’에 관한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집시법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처벌한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3월 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해 집회를 주최한 자를 처벌하는 집시법 제11조 제2호 ‘국회의장 공관’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법불합치는 법률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을 즉각 위헌 무효로 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기 위해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먼저 “심판대상 조항은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서 옥외집회와 시위가 개최될 경우 국회의장의 원활한 직무 수행과 공관 거주자 등의 신변 안전, 주거의 평온, 공관으로의 자유로운 출입 등이 저해될 위험이 있음을 고려해, 그와 같은 집회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국회의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일체의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그러나 “심판대상 조항이 집회금지 장소로 설정한 ‘국회의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에 있는 장소’에는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입하는 것과 무관한 지역, 다른 건물이나 녹지로 가로막혀 국회의장 공관 부지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등 해당 장소에서 집회가 개최되더라도 국회의장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거나 국회의장 공관으로의 출입 내지 안전에 위협을 가할 우려가 없는 장소까지 포함돼 있다”고 짚었다.

또한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소규모 집회의 경우,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보호되는 법익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며 “따라서 이러한 소규모 집회가 일반 대중의 합세로 인해 대규모 집회로 확대될 우려 내지 폭력집회로 변질될 위험이 없는 때에는 그 집회의 금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게다가 집시법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의 주최 금지 등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을 보호할 다양한 규제 수단을 마련하고 있고,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행위나 업무방해 행위 등은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 처벌되므로,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서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심판대상 조항이 달성하려는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그럼에도 심판대상 조항은 국회의장 공관 인근 일대를 광범위하게 전면적인 집회 금지 장소로 설정하고,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는 집회까지도 예외 없이 금지하는데, 이는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며 “따라서 심판대상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에 반하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장 공관 인근의 집회 중 어떠한 형태의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할 것인지는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따라서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이 사건 구법 조항은 이미 개정돼 향후 적용될 여지가 없으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그 적용을 중지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리고 구법 조항과 내용이 같은 이 사건 현행법 조항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위헌적인 상태를 방치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므로, 법질서의 정합성과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이 사건 현행법 조항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그런데 현행법 조항의 적용을 중지할 경우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보호에 관한 법적 공백이 초래될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자의 개선 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입법자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 입법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2024년 5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사건 현행법 조항은 2024년 6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 조항이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과 안녕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국회의장 공관 인근의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충하는 법익 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으므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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