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는 수사기관이 인터넷회선을 통해 오가는 정보를 포괄적으로 감청하는 소위 ‘패킷감청’이 수집하는 정보가 광범위하고 권한남용의 위험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본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통제장치도 없이 허용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통신망에서 정보 전송을 위해 쪼개어진 단위인 전자신호 형태의 패킷(packet)을 수사기관이 중간에 확보해 그 내용을 지득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수사기관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헌법재판소는 문OO 목사가 2016년 3월 낸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합헌 2명, 각하 1명)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범죄수사를 위해 통신제한조치의 하나로 패킷감청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패킷감청은 그 기술적 특성으로 수사기관이 허가받은 범위 이상의 매우 광범위한 범위의 통신 자료를 취득하게 됨에도, 현행법상 집행 과정이나 그 이후에 객관적인 감독ㆍ통제 수단이나 감청자료의 처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패킷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개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중대 범죄의 수사에 있어 패킷감청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사후적 통제를 위한 구체적 개선안 마련은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므로, 단순위헌결정이 아니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따라서 잠정 적용을 명한 기한인 2020년 3월 31일까지 입법자가 구체적 개선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터넷회선에 대한 감청인 패킷감청은 더 이상 행해질 수 없게 된다.

자신 명의로 가입된 인터넷회선에 대해 통신제한조치가 포함돼 있는 것을 알게 된 목사는 “인터넷회선의 감청을 목적으로 하는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법원의 허가, 이에 따른 국가정보원장의 감청행위,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 등이 청구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 등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2016년 3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진=헌법재판소
사진=헌법재판소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대해 헌재는 먼저 “인터넷회선 감청은, 인터넷회선을 통해 흐르는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을 중간에 확보한 다음 재조합 기술을 거쳐 그 내용을 파악하는 이른바 ‘패킷감청’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며 “따라서 이를 통해 개인의 통신뿐만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한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됨에 따라 국가 및 공공의 안전, 국민의 재산이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행의 저지나 이미 저질러진 범죄수사에 필요한 경우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하는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을 허용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헌재는 그러나 “인터넷회선 감청으로 수사기관은 타인 간 통신 및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하는 통신자료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된다”며 “따라서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법원의 허가 단계에서는 물론이고, 집행이나 집행 이후 단계에서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관련 기본권 제한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헌재는 “‘패킷감청’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회선 감청은 수사기관이 실제 감청 집행을 하는 단계에서는 해당 인터넷회선을 통해 흐르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 형태로 수집돼 일단 수사기관에 그대로 전송되므로, 다른 통신제한조치에 비해 감청 집행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자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방대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목했다.

그러면서 “특정 다수가 하나의 인터넷회선을 공유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 집행 단계에서는 법원이 허가한 범위를 넘어 피의자 내지 피내사자의 통신자료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터넷회선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인의 통신자료까지 수사기관에 모두 수집ㆍ저장된다”며 “따라서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개인의 통신자료의 양을 전화감청 등 다른 통신제한조치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인터넷회선 감청은 집행 및 그 이후에 제3자의 정보나 범죄수사와 무관한 정보까지 수사기관에 의해 수집ㆍ보관되고 있지는 않는지, 수사기관이 원래 허가받은 목적, 범위 내에서 자료를 이용ㆍ처리하고 있는지 등을 감독 내지 통제할 법적 장치가 강하게 요구된다”고 짚었다.

헌재는 “그런데 현행 통비법은 관련 공무원 등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고(제11조), 통신제한조치로 취득한 자료의 사용제한(제12조)을 규정하고 있는 것 외에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하는 막대한 양의 자료의 처리 절차에 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현행 통비법상 전기통신 가입자에게 집행 통지는 하게 돼 있으나 집행 사유는 알려주지 않아야 되고, 수사가 장기화되거나 기소중지 처리되는 경우에는 감청이 집행된 사실조차 알 수 있는 길이 없도록 돼 있어, 더욱 객관적이고 사후적인 통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현행법상 감청 집행으로 인해 취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범죄와 관련되는 범죄를 수사ㆍ소추하거나 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사용이 가능하므로 특정인의 동향 파악이나 정보수집을 위한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인터넷회선 감청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감청을 수사상 필요에 의해 허용하면서도, 관련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행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경과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거나, 감청을 허가한 판사에게 감청 자료를 봉인하여 제출하도록 하거나, 감청자료의 보관 내지 파기 여부를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는 등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한 자료에 대한 처리 등을 객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는 입법례가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이상을 종합하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특성을 고려해 그 집행 단계나 집행 이후에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관련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수사 목적을 이유로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신제한조치 허가 대상 중 하나로 정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러한 여건 하에서 인터넷회선의 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개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게 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해 달성하려는 공익과 제한되는 사익 사이의 법익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 헌법불합치결정 및 잠정 적용명령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되지만, 단순위헌결정을 하면 수사기관이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한 수사를 행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사라져 범행의 실행 저지가 긴급히 요구되거나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의 수사에 있어 법적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가지는 위헌성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인터넷회선 감청으로 취득하는 자료에 대해 사후적으로 감독 또는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에 있으므로 구체적 개선안을 어떤 기준과 요건에 따라 마련할 것인지는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입법자가 이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내용으로 개정할 때까지 일정 기간 이를 잠정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2020년 3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한다”고 헌법불합치결정을 설명했다.

◆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의 ‘합헌’ 반대의견

이들 재판관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집행 단계에서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이나 관련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를 객관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회선 감청의 기술적 특성 등으로 인해 취득한 자료가 다른 통신감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광범위하더라도, 통비법상 감청집행기관의 공무원이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외부에 공개ㆍ누설하는 것은 일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하는 공무원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게 되며, 범죄수사와 관련되지 않는 것은 성질상 수사ㆍ소추하거나 그 범죄를 예방하는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나아가 감청집행기관인 수사기관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는 한 이를 보존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지체 없이 파기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들 재판관들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기술적 특성상 다른 통신감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정보가 수집되는 면이 있고, 수사기관이 법에서 마련한 조치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만을 가지고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해 제한되는 사익의 정도가 그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에 비해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한다”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인터넷회선 감청의 기술적 태양과 대상의 특수성과 이로 인한 감청의 집행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침해가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인터넷회선 감청의 집행 단계에서 법원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법 등이 검토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 법률조항이 아니라 제9조가 개정될 수 있음을 지적해 둔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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