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의 판례 해설]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와 자동차 양도담보계약 체결한 후 등록을 하기 전에 이를 임의로 처분한 행위에 대하여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8682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2016년 6월경 미납대금 채무와 관련하여 피해자 회사에 이 사건 자 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약정하였다. 따라서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에게 이 사건 자동차에 관하여 등록명의를 이전해 주어야 할 의무를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2017년 3월경 제3자에게 이 사건 자동차를 245만 원에 임의로 매도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위 금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피해자 회사에 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하여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1심 및 원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30만 원의 유죄를 선고하였다. 종전의 대법원 판례가 권리이전에 등기ㆍ등록을 요하는 동산인 자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하고(대법원 1989. 7. 25. 선고 89도350 판결 등)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사례의 쟁점은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종전의 판례를 변경할 것인지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해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제355조 제2항)를 말한다. 배임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에 기초한 타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여 그 타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데에 있다. 따라서 배임죄의 주체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과의 내부적인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신임관계에 있게 되어 그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ㆍ관리하는 것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이 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무의 처리가 오로지 타의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을 아울러 가진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사무로서의 성질이 부수적ㆍ주변적인 의미를 넘어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대법원 2005. 3. 25. 선고 2004도6890 판결, 대법원 2015. 5. 10. 선고 2010도3532 판결 등).

배임죄의 구성요건 행위인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여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00. 3. 14. 선고 99도457 판결,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동안 대법원이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범위를 해석함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이후(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부동산을 대물변제하기로 예약을 한 후 처분한 경우(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같은 법리를 들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다만 부동산의 경우 중도금을 지급받은 후 2중으로 양도한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속한다면서 배임죄를 인정하였다(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기본적으로 어떤 고민에서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가 시작될까? 우리나의 법체계는 채무자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불이행의 경우에는 민사상의 문제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구제방법은 소송 등을 통해서 집행권원을 얻은 다음 채무자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는 방식이다. 채무자가 재산이 없는 경우 만족을 얻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죄, 배임죄, 횡령죄 등으로 형사고소를 해서 채무자를 압박해 돈을 받으려 한다. 고소ㆍ고발 사건이 난무하게 된 까닭이다. 문제는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단순하게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 기소가 돼 재판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로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경우에는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배임죄의 경우에도 채무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단순히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으로 끝나게 된다.

대법원은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채무자가 일정한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봐서는 안 되고, 통상의 계약에서 이루어지는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인정돼야 비로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배임죄의 성립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대하여 대법원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 원 2020. 8. 27. 선고 2019도14770 전원합의체 판결 등). 단순히 채권채무관계에 기한 의무가 발생한 경우만으로 곧바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발생하는 의무관계와 달리 약정에 의해서 발생하는 채무관계는 단순히 의무를 이행하는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동안 변경된 대법원 판례의 경향이라면 위 사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권리이전에 등기ㆍ등록을 요하는 동산인 자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법원은 위 사례에 대하여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고인에게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8682 전원합의체 판결). 또한 이에 배치하는 대법원 1989. 7. 25. 선고 89도350 판결 등을 변경하였다. 그 이유는,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는 담보목적의 달성 을 위한 것이므로,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를 변제하는 것이고,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른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고,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 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으며(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 의체 판결 등), 이러한 법리는 권리이전에 등기ㆍ등록을 요하는 동산에 관한 양도담보 설정계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야 하므로 자동차 등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는 채권 자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이를 타에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ㆍ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민사적 채무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이라는 대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를 경우 배임죄를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은 물론,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발생하는 신임관계와 약정에 의해서 발생하는 신임관계를 별개로 취급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고, 또한 동산이중양도와 부동산 이중양도를 구별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지의 여부를 달리 봐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약정에 의해서 담보물의 유지 관리의무를 보다 강화하는 약정이 가능하고, 그러한 약정의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보겠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따라서 우리 형법상 배임죄의 규정이 유지되는 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채무불이행죄가 마련돼 있다면 그 규정에 의해서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만, 별도로 채무불이행죄가 없는 이상은 배임죄에 의해서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근거로 보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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