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형계약 추가 입법, 적극 검토해야>

언젠가부터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여행사가 계약취소를 거부하거나 마음대로 일정을 변경하여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급증하자 이를 막기 위하여 2015년 여행자 권리보호를 위한 조치로 민법에 여행계약을 신설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여행을 떠나기 전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여행사의 일방적 계약내용 변경과 추가요금 청구가 불가능하게 되어 소비자의 보호가 한층 강화되었다.

원래 모든 계약은 계약자유원칙의 적용을 받아 불법부당한 내용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증여, 매매, 임대차, 고용, 도급, 위임 등 일상생활에 중요한 계약유형 14가지에 대해서는 19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유형별 규정을 두었고, 한참 후인 2015년 여행계약이 추가되어 현재 15가지가 된 것이다.

1960년 민법 시행 후 55년간 민법의 전형계약이 14가지로 유지되어 왔는데, 갑자기 소비자보호를 목적으로 여행계약이 추가되자 종래 필요성이 논의되던 계약들이 줄지어 전형계약에의 편입을 기다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른바 의료계약의 입법이 강력히 논의되고 있는바, 오래전부터 의료분쟁이 늘고 있고 계약이론상 환자가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지만 입증책임을 전환하여 환자의 지나친 입증책임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다.

이에 따라 환자와 의사 간 의료계약도 민법상 전형계약에 포함시켜 의료소비자의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진료와 수술 등 의료서비스 전반에서 의사의 방어적 태도를 초래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12월 입법예고에 의하면 이른바 디지털콘텐츠계약을 16번째 민법전형계약으로 신설하는 입법을 준비 중이다. 신설이유는, 디지털기술 발전과 IT인프라 확산으로 디지털콘텐츠 관련서비스 제공과 소비가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나 이를 대상으로 하는 제공자와 이용자 간 디지털콘텐츠계약을 규율하는 규범이 없는 상황인바, 디지털콘텐츠나 데이터는 복제가 용이하고 배타성이 없어 물건으로 취급되기 어렵기 때문에 물건을 사고파는 계약을 전제로 만들어진 민법의 계약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디지털콘텐츠계약을 민법에 신설하여 계약당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거래의 편의와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지난 55년간 변화가 없던 민법의 14가지 전형계약이 변화되기 시작한 이유는 소비자 등 계약당사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20세기에 제정된 노동법이나 경제법 등 사회법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규범임을 감안하면, 이와 유사한 취지로 계약상 피해가 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신설 입법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 디지털콘텐츠계약을 신설하면 의료계약 입법에 대해서도 입법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될 것인바,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세계적으로 입법사례도 충분한 의료계약을 이번 민법 개정에 함께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

시대가 진행되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질수록 환자가 증가하고 의료계약 체결이 많아지는 오늘날,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계약의 특수성을 보다 중대하게 인식하여 관련 약자의 법적 보호를 강화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종래 의료분쟁에서 환자가 과실을 증명해야 하고 재판에서도 의료 비전문가인 법관의 재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료계약을 민법에 신설하여 의료제공자의 주의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환자의 입증책임을 보다 완화함으로써 현재의 의료분쟁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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