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와 이를 적용ㆍ집행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대법원 2022년 8월 30일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원고들 중 이 사건 본인들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피고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되었고 나아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어 형을 복역하였다. 이 사건 본인들과 그 가족(본인들이 사망한 경우)인 원고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과 원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며,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져야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이 상고한 사건이다.

해설)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와 이를 적용ㆍ집행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상고심의 주요 쟁점이다.

먼저 관련 법 규정을 보면 국가배상법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이 전투ㆍ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하여 전사(전사)ㆍ순직(순직)하거나 공상(공상)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ㆍ유족연금ㆍ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과거의 대법원 판례는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ㆍ무효로 선언된 경우, 그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거나,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고 한다)는 그 발령의 근거가 된 구 대한민국 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고 한다) 제53조가 규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ㆍ무효이다(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참조).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ㆍ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고 봤다.

따라서 위 사례에 대한 상고심 사건에서 과거의 판례를 그대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위헌ㆍ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ㆍ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거나 나아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함으로써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대한민국)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면서 이에 배치되는 과거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하였다(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판결이유는 이렇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ㆍ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①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상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그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나 위헌ㆍ무효이고(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이렇게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이상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는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보기 충분하며, ②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발령행위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긴급조치 제9호를 그대로 적용·집행하는 추가적인 직무집행을 통하여 그 손해가 현실화되고, ③영장주의를 전면적으로 배제한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ㆍ무효이므로, 그에 따라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ㆍ구금은 헌법상 영장주의를 위반하여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직무집행임이고, 또한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음에도 수사과정에서의 기본권 침해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위헌ㆍ무효인 긴급조치를 적용하여 내려진 유죄판결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④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ㆍ구금, 그에 이은 수사 및 공소제기 등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긴급조치의 발령 및 적용ㆍ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에 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고, ⑤나아가 이 사건과 같이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위 판결에 대하여는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ㆍ적용ㆍ집행과 같이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특정하거나 증명하지 않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거나,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ㆍ적용ㆍ집행과 같이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특정하거나 증명하지 않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보아야한다’거나, ‘긴급조치 제9호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발령하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집행한 것이므로,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로서 이루어진 긴급조치 제9 호의 발령과 강제수사 및 공소제기라는 불가분적인 일련의 국가작용은 대통령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이고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의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도 대통령의 위법한 직무행위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한다’는 별개의견이 있다.

그러나 별개의견의 경우에도 다수의견과 마찬가지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귀책사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이 당시의 법에 따라서 법적용을 한데 대하여 귀책사유를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견해의 차이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행위, 법률을 해석하는 행위는 모두 국가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잘못된 법률의 제정‧집행‧해석에 대하여는 최종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해당 법률이 헌법재판소나 법원에서 위헌 무효로 선언되기 전에는 그 법률에 기초해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더라도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거나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행위에 기하여 국가긴급권을 행사할 수 있고, 대통령의 그러한 행위는 정치적인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법리(과거의 판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본 법리를 무시한 것으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잘못된 국가긴급권의 행사로 인해서 개인이 피해를 입은 경우 당연히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고, 다만 긴급권을 행사한 대통령에 대하여 민사ㆍ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만 고도의 정치행위를 인정할 것인지, 당해 행위기 고도의 정치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그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지극히 정당한 것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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