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비폭력주의ㆍ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법원이 최초로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A씨가 2017년 11월 서울지방병무청장의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평화활동가이자 연구자인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종교적ㆍ정치적 신념에 기초로 한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인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A씨에게 병역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항소심)인 의정부지법은 그동안 A씨의 여러 활동과 삶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신앙과 신념이 피고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피고인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사가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번 사건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폭력주의ㆍ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경우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자신의 비폭력주의ㆍ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의 현역병 입영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을 수긍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A씨는 교인으로서 비폭력주의ㆍ반전주의 신념과 기독교 신앙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주장했다”며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은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비폭력주의ㆍ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한 최초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8년 이후 무죄를 선고 받은 병역거부자는 800명이 넘지만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한다. 활발하게 평화운동에 참여해온 평화주의자들의 경우 대부분 유죄를 선고 받았다.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재판 중인 병역거부자 숫자는 92명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의 기본 법리는 2018년 11월 1일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기초다.

당시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가피하게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ㆍ윤리적ㆍ도덕적ㆍ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며 “따라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고, 이때 진정한 양심이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2021년 2월 25일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2019도18442)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 등을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한 최초 판결이 있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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