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아내가 투병하는 남편을 수년 동안 간호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자식들보다 남편의 재산을 더 상속받을 수는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쉽게 말해 배우자는 민법의 법정상속분에서 이미 자녀보다 많이 배분받고 있고,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판단해 배우자로서 병간호에 대한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A씨가 사망한 이후 A씨의 전처(사망)가 낳은 자녀 9명과 후처 B씨 및 자녀 사이에 벌어진 재산 상속 분쟁이다.

A씨는 전처가 사망한 후 1987년 B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사망할 때까지 동거하며 두 자녀를 낳았다. 

A씨는 2003년부터 2008년 3월 사망할 때까지 대학병원에 가서 통원치료를 받았고, 그 사이 9회에 걸쳐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B씨는 그동안 남편을 간병했다.

A씨가 사망하자 첫째 부인 자녀들이 B씨(자녀 포함) 등을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이에 B씨는 수년 동안 A씨의 투병생활을 간호한 점을 들며 반대로 기여분 결정을 청구했다.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경우, 이러한 사정을 상속분 산정시 고려함으로써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지난 2005년 개정된 민법은,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ㆍ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에는 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A씨에 대한 B씨의 병간호를 특별한 부양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인 서울가정법원은 2013년 전처 자식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B씨 측의 기여분 주장을 배척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1심과 마찬가지로 B씨 측의 기여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B씨 측은 “기여분이 인정돼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재항고를 제기했다.

쟁점은 배우자(아내)가 상당한 기간 투병 중인 피상속인(남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그런 사정만으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1일 병간호를 이유로 기여분을 주장하는 B씨의 재항고를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관 다수의견(12명)은 배우자의 기여분을 부정하며 재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종래 대법원은 ‘기여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위해 상속분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상속재산의 유지ㆍ증가에 특별히 기여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 왔다”며 “대법원 판례는 법리적ㆍ현실적으로 여전히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배우자가 상당한 기간 동안 동거ㆍ간호를 통해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그러한 사정만으로)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반드시 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면, 일체의 사정을 고려해 후견적 재량에 따른 판단으로 기여분을 정하도록 한 민법 및 가사소송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장기간의 동거ㆍ간호만을 이유로 (다른 공동상속인, 예컨대 자녀와 달리) 배우자에게만 기여분을 인정한다면, 제1차 부양의무인 부부간 상호부양의무를 정한 민법 규정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배우자의 부양행위에 대해 기여분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면, 결국 해석으로 법정상속분을 변경하는 결과가 돼 민법의 입법 취지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민법은 성년인 자녀보다 배우자에게 더 높은 정도의 동거 부양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며 “대신 배우자에게 공동상속인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있는데, 배우자의 통상적인 부양을 가산된 법정상속분을 다시 수정할 사유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정상속분에 대한 민법의 규정은 배우자 A, 자녀 B, C가 상속할 경우 A : B : C = 1.5 : 1 : 1로 나누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2005년 민법 개정으로 기여분의 인정 요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법상 부양의무의 이행으로 평가될 만한 동거ㆍ간호’를 종전과 달리 공동상속인 중 하나인 ‘배우자에게만’ 기여분 인정 요건으로 봐야 할 이유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홀로 남은) 배우자의 보호를 위해 기여분 제도를 이용하자는 주장은 현행법의 해석론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핵가족화를 고려하면 기여분 인정요건을 완화해 해석할 현실적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대여명의 증가로 배우자가 노년기에 투병하는 피상속인과 동거하며 간호할 가능성이 높아 장기간의 동거ㆍ간호에 따른 무형의 기여행위를 기여분 산정에 적극적으로 고려할 여지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B가 통상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이행한 정도에 불과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해야 할 정도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여분결정 청구를 배척했다”며 “원심의 판단에 기여분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재판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 조희대 대법관 반대의견 “배우자의 기여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편, 조희대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배우자의 기여분을 인정하는 파기환송 의견을 제시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부양한 경우, 배우자의 이러한 부양행위는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에서 정한 기여분 인정 요건 중 하나인 ‘특별한 부양행위’에 해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우자에게 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 민법 제1008조의2 제1항의 개정으로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는 입법 취지가 분명해졌고,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면서 간호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특별한 부양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문언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조희대 대법관은 “특별한 부양행위는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ㆍ증가와의 인과관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개정 취지에 부합하고, 배우자의 상당한 기간 동거ㆍ간호는 (설령 그것이) 민법상 부양의무의 이행이라 하더라도 다른 공동상속인에 대한 관계에서 특별한 부양행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조 대법관은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부부가 함께 형성한 재산의 청산과 상속분의 배분적 측면에서 배우자와 자녀의 공평을 실현할 수 있으며, 노인 돌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추어 타당한 해석이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형평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이 보는 이번 판결의 의미는?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종래의 대법원 판례는 여전히 타당하다는 이유로, 이를 유지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배우자의 장기간 동거ㆍ간호에 따른 부양행위에 대한 기여분 인정’에 관해 ▲배우자의 동거ㆍ간호가 부부 사이의 제1차 부양의무 이행을 넘어서 ‘특별한 부양’에 이르는지 여부와 더불어 ▲동거ㆍ간호의 시기와 방법 및 정도뿐 아니라 동거ㆍ간호에 따른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와 배우자에 대한 특별수익액, 다른 공동상속인의 숫자와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등 일체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배우자의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가려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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