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찰이 ‘수갑 찬 피의자’ 언론에 촬영 허용은 위법…국가 손해배상책임
법원, 경찰이 ‘수갑 찬 피의자’ 언론에 촬영 허용은 위법…국가 손해배상책임
  • 신종철 기자
  • 승인 2019.08.0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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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더] 경찰서에서 수갑을 차고 얼굴이 드러난 상태에서 조사받는 피의자를 언론사에게 촬영을 허용해 보도하게 한 것은 피의자의 초상권 및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건은 이렇다. A씨와 B씨 형제는 지난 2011년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보험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2012년 4월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을 조사한 강동경찰서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교통사고 위장, 보험금 노린 형제 보험사기범 검거’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어 경찰관들은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해 B씨가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각 언론사는 이들의 피의사실에 관한 뉴스 및 기사를 보도하면서 ‘36세 O모씨 형제’ 등으로 표현하고, B씨가 수갑을 차고 얼굴을 드러낸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조사받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해 방송했다.

그 후 A씨는 사기죄로 기소됐으나 1심 법원은 2015년 10월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으나, 2016년 10월 기각돼 무죄가 확정됐다.

한편, B씨에 대해 1심 법원은 2016년 9월 사기 및 공갈죄로 징역 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법원은 2018년 1월 징역 3년6월을 선고했으며, 대법원에서 B씨의 상고가 기각돼 확정됐다.

B씨는 “경찰관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조사과정의 촬영을 허용한 행위는 인격권과 신체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3월 “서울강동경찰서 경찰관이 B씨에 대한 조사과정의 촬영을 허용한 행위는 B씨의 인격권을 침해해 위헌”임을 확인하는 결정(2012헌마652)을 내렸다.

아울러 A씨와 B씨는 경찰관들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1000만원, 수갑 차고 조사를 받는 화면이 방송된 B씨는 4000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보도자료 배포 등 피의사실 공표 및 촬영 허용, (컴퓨터 화면에) 실명을 공개해 인적사항이 특정되고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한 행위 등으로 인격권, 초상권 등 기본권이 침해됐고, B의 형사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으므로, 국가는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8단독 강하영 판사는 최근 A씨와 B씨 형제가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국가)는 B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강하영 판사는 먼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이를 발표함에 있어서도 정당한 목적 하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공식의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짚었다.

강 판사는 “서울강동경찰서 경찰관들은 원고들을 기소하기 전에 보도자료 배포로 인해 원고들에 대한 피의사실이 공표됐고, 그로 인해 원고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공익성 측면에서, 경찰관들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봤다.

그러나 강하영 판사는 “B씨에 대한 촬영 허용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과 같이 피의자를 특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수사기관 내에서의 촬영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고, B씨는 보험사기를 이유로 체포된 피의자에 불과해 신상에 관한 정보공개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명시적으로 촬영 거부의사를 밝히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담당 경찰관으로서는 B씨에 대한 촬영 요청을 허용하지 않거나, 촬영을 허용하더라도 얼굴 공개가 가져올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해 모자, 마스크 등으로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하영 판사는 “경찰관들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B씨가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게 허용했고, 그에 따라 언론사들은 B씨가 수갑을 차고 얼굴이 드러난 상태에서 조사받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해 방송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부 언론에서는 조사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B씨의 실명까지 나타나게 방송해 B씨의 초상권 및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B씨에 대한 촬영 허용행위는 위법하고, 국가는 그로 인해 B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에 대해 강 판사는 “피고는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B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불법행위 전후의 사정, 직업, 신분, 형사사건의 결과,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면 위자료 액수는 10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A씨에 대해서는 촬영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초상권 및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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