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변호사)가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위조된 증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등 검사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지적하며 검찰총장의 사과를 권고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의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심의한 내용을 8일 공개했다. 위원회는 “잘못된 검찰권 행사에 의해 억울하게 간첩의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검찰총장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간첩 증거조작 피해자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피해자 유우성씨.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은 화교 출신 탈북자인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이 2006년 5월 23일 어머니 장례식 참석을 위해 밀입북했다가 5월 27일 중국으로 돌아오고, 그 무렵 재차 밀입북해 회령시 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된 후 2007년 8월 중순경부터 2012년 1월 24일경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밀입북하고, 동생 유가려를 통해 탈북자 신원정보 파일을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는 국가보안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2013년 8월 서울시청에서 일하면서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우성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9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공판에서 검사가 유우성의 출입경기록(중국과 북한을 왕래한 기록) 등을 제출하자, 유우성의 변호인은 연변조선족자치주 관계기관이 발행한 출입경기록 등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검찰 측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4년 2월 중국 주한대사관 영사부는 서울고등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에서 검사가 제출한 유우성 출입경기록 등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회신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재판장 김흥준 부장판사)는 2014년 4월 25일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유우성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5년 10월 29일 유우성 전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간첩)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증거조작과 관련해 2014년 서울중앙지검에 구성된 진상수사팀은 증거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과 국정원 협조자, 주선양 대한민국총영사관 영사 등을 기소하고 유우성 사건의 수사 및 공판에 관여한 검사 2명과 국정원장은 불기소처분했다.

사진=법무부
사진=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국정원이 유가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 임의성이 의심되는 유가려의 진술 이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음에도 무리하게 사건을 기소했다는 의혹, 1심 공판 과정에서 유우성에게 유리한 증거가 고의로 은폐됐다는 의혹, 항소심 공판과정에서 제출된 위조된 출입경기록 등과 관련해 검사가 증거위조를 알면서 묵인했다는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권고했다.

유가려의 변호인(유우성의 변호인이기도 함)은 유우성이 구속기소된 때를 전후해 9회에 걸쳐 유가려에 대한 변호인 접견 및 서신 전달을 국정원에 요청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유가려가 신체구속된 피의자가 아니라 합동신문센터에서 수용된 탈북자로서 참고인에 불과하며 본인이 변호인 접견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접견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서는 접견 신청 당시 사실상 수사가 개시된 피의자였던 유가려(자신이 중국 국적의 화교임과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임을 자백했으므로 얼마든지 피의자로 입건할 수 있는 상태였음)의 변호인 접견교통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다.

검사 역시 유가려가 마치 참고인인 것처럼 외양을 유지함으로써 변호인 접견을 차단하는 것을 용인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유우성 항소심 공판에서 검사가 제출한 출입경기록을 비롯한 다수의 문건이 위조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문건 중에도 허위성이 확인된 문건이 있는데, 검사가 증거조작에 적극 가담했는지, 조작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는지, 증거로 제출함에 있어 검사가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가 문제됐다.

◆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조사과정에서 유가려에 대한 가혹행위

검찰과거사위원회는 합신센터 조사과정에서 조사관들로부터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유가려의 진술은 진술의 일관성, 진술 태도 등에 비추어 볼 때 진정성이 인정되며, 폭행 정황을 뒷받침하는 국정원 수사관의 목격 진술이 존재하는데 반해, 가혹행위를 한 당사자로 지목된 합신센터 조사관들은 법정진술을 담합하고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왜곡해 위증한 사실이 확인됐으므로, 유가려가 주장하는 가혹행위가 실제로 있었다고 판단했다.

변호인이 유가려에 대한 접견을 신청할 때 유가려는 사실상 피의자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유가려에 대한 변호인 접견신청을 불허한 국정원의 처분은 유가려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및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수사검사는 국정원으로부터 변호인 접견 거부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국정원 수사팀과 협의해 유가려의 진술 번복을 방지하고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참고인 신분의 외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유가려를 불입건하기로 결정했고, 유가려의 변호인 접견 의사를 확인했음에도 계속 불입건 결정을 유지하는 등 검사 역시 국정원의 위법한 처분을 용인하거나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 수사팀이 유우성 사진에 위치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 및 디지털 포렌직 전문가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국정원 수사팀은 증거로 제출될 사진의 위치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분에 대해 수사검사 또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확인하지 않은 수사 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과거사위원회는 지적했다.

이와 함께 유우성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유가려의 일부 진술서들이 송치기록에서 누락됐다가 1심 공판과정에서 뒤늦게 증거로 제출되었고, 유우성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던 참고인의 진술도 법정증언을 통해서 공개됐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들 증거가 기록에서 누락되고 지연 제출된 배경에는 국정원의 의도적인 은폐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할만하며, 검사도 증거의 누락 사실을 알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지위와 상황에 있었다”며 “설령 처음에는 몰랐다 하더라도 면밀하게 기록을 검토했다면 수사지휘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록검토를 소홀히 함으로써 적정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그럼에도 검사는 이를 확인하거나 기록에 편철하지 않음으로써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검사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원회는 “검사는 화룡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상의 출입경내역이 종전에 검사가 확인한 출입경조회 전산화면 출력물과 다른 이유, 자료의 출처, 국정원 수사팀이 실제 어떤 방법으로 자료를 확보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았다”며 “뿐만 아니라 검사는 출입경기록의 확보 경위를 밝힌 의견서를 여러 차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자료 입수 경위를 설명함에 있어 재판부를 기망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공식적인 경로로는 출입경기록을 입수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발급하거나 사실을 확인해주고 영사가 제공받았다는 일련의 출입경 관련 자료들이 제출되었음에도, 반복적으로 검증다운 검증을 하지 않았고 자료의 입수 경위 및 신빙성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하고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점에 비춰볼 때, 검사가 단순히 부주의했거나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증거조작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 증거조작에 대한 검사의 인식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주요 사실관계에 대해 검사들의 진술이 모순되고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불일치해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나, 검찰 진상수사팀은 검사들이 증거위조 사실을 몰랐고 오히려 속았다고 판단하고 검사들에 대해서는 통화내역 확보나 업무용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시도하지도 않았다”며 “이는 검사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서 검사들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간첩증거조작 피해자 유우성 및 유가려에 대한 검찰총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관여한 검사들은 유가려와 변호인과의 접견을 차단할 목적으로 국정원 수사팀과 협의해 의도적으로 유가려를 불입건하는 결정을 했고,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생성된 진술 및 국정원이 입수한 증거들의 진정성과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많은 요인이 존재하고 이를 인식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음에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일부 증거는 허위임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유우성 사건 수사ㆍ공판검사는 검사로서의 인권보장의무와 객관의무를 방기함으로써 국정원의 인권침해 행위와 증거조작을 방치하고 국정원에 계속적인 증거조작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며 “이 사건 검사들에 대한 진상수사팀의 수사는 검사의 과오와 책임을 규명하기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더욱이 이 사건 증거조작 가담자들이 기소된 직후인 2014년 5월 검찰이 2010년 3월에 이미 기소유예처분을 했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유우성을 추가 기소한 것은 공소권을 남용한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고 비판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그러면서 “이와 같이 잘못된 검찰권 행사에 의해 억울하게 간첩의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유우성, 유가려)에게 검찰총장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 국정원의 대공수사 및 탈북민 조사과정에서 인권침해 방지 방안 등 마련

이와 함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에서 국정원이 조사했던 다수의 탈북민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되거나 진술이 오염될 수 있는 정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종래의 대공수사 관행을 보면 이 사건과 같이 국정원 수사과정에서 피조사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공권력 남용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전적으로 국정원이 제공하는 자료에 의존하는 검사로서는 마땅히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①대공수사 과정에서 증거로 확보한 자료가 해외에서 생성된 문건일 경우 해당 문건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 ②혐의사실 입증을 위한 탈북민의 진술증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 절차(예컨대, 진술인에 대한 참고인 조사 의무화 등)를 마련할 것, ③국정원 합신센터 신문과정에서도 범죄혐의와 관련해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 피조사자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조사과정의 진행경과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기록하는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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