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해지고 있다. 법원이 15년이나 연체된 양육비에 대해 지급 이행명령을 내리거나, 교육비(학원비)와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이미 정했던 양육비를 증액해 주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19일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이종엽)과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이혼 소송 중인 2008년 9월 “딸은 A가 양육하며, 친권자로 정하고, 양육비 청구는 하지 않는다. 대신, B는 A의 동의 없이 자녀를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2주 뒤에는 가정법원 조정기일에 출석해 다음과 같은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자녀가 성년이 되는) 2028년까지 매월 4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한다. 남편은 사전협의를 거쳐 자녀를 자유롭게 면접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남편은 양육비를 보내지 않았고, 아이도 면접하지 않았다. A씨는 전 남편의 소득 현황을 알기 때문에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포기한 심정에 독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혼 후 15년이 흐른 2023년 딸의 교육비(학원비 등)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던 A씨는 전 남편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보고 깜짝 놀랐다. 전 남편은 서울의 고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양육비 이행명령을 신청했다. 전 남편은 “이혼합의서에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며 황당해했다.

법원은 이혼합의서 보다는 이후 작성된 조정조서의 법적 효력을 중시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정연희 판사는 최근 A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제기한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 사건에서 “전 남편은 A씨에게 미지급 양육비 중 2900만원을 분할해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정연희 판사는 “A씨와 전 남편이 이혼소송 중에 ‘양육비 청구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혼합의서를 작성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이혼합의서는 조정 성립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서, 이후 양육비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된 이상 전 남편이 이혼합의서에 기해 양육비 지급 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연희 판사는 “이혼 조정 성립일인 2008년 10월 이후 신청인(A)이 피신청인에게 양육비 지급을 최고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미지급 양육비 발생 기간이 상당히 장기여서 이전의 과거 양육비 모두를 단기간에 부담시킬 경우 과도한 면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최근 6년간 발생한 양육비 2880만원(매월 40만원, 72개월)의 이행을 명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연희 판사는 판결문에 주의 사항으로 “만일 정당한 이유 없이 이 명령에 위반하는 때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고, 금전의 정기적 지급의무를 3기 이상 이행하지 않은 때에는 30일의 범위 내에서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이 사건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소송대리인으로 나영현 공익법무관이 진행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와 함께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교육비와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기존에 정한 양육비를 증액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2008년 11월 협의이혼하면서 ▲자녀 친권자 및 양육자로 A씨를 지정하고 ▲B씨가 A씨에게 양육비로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30만원을 지급하며 ▲대학등록금과 수술비, 병원비는 반씩 부담하기로 정했다.

B씨는 2008년 12월부터 2023년 6월까지 A씨에게 양육비로 총 4341만원을 지급했다. B씨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달도 있고, 20만원을 주는 등으로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15년이 흐른 2023년 A씨는 전 남편이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형편이 나아진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미지급 양육비 일부를 지급하고, 매월 지급되는 양육비를 90만원으로 증액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고등학생이 된 자녀 교육비(학원비)로 매월 44만원이 지출되고 있고, 또한 그동안 물가가 상승하고,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진 점을 들어 양육비 증액을 요구한 것이다. A씨는 딸을 키우면서 병원비로 930만원을 지출했다.

광주가정법원 심판부 황민웅 판사는 2023년 7월 “전 남편은 자녀의 과거양육비로 1404만원과 장래양육비로 2023년 7월부터 자녀가 성년에 될 때까지 매월 70만원을 지급하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404만원은 미지급 과거양육비 939만원과 병원비 절반을 부담한 465만원을 합한 금액이다.

황민웅 판사는 “자녀의 나이와 양육 상황, 전 남편의 경제사정,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양육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협의이혼 당시 정해진 양육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자녀의 복리를 저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보여 부당하므로, 이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황민웅 판사는 “청구인(A)이 단독으로 자녀를 양육한 기간, 전 남편의 경제적 능력, 서울가정법원이 제정 공표한 양육비 산정기준표의 내용 등을 종합하면, 상대방(전 남편)이 부담해야 할 양육비는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매월 70만원을 증액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전 남편이 불복해 항고했으나, 광주가정법원 제3가사부(재판장 심재광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5일 항고를 기각하며, 양육비로 매월 7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1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전 남편이 주장한 사정 및 제출된 증거를 모두 살펴봐도, 제1심이 자녀(사건본인)에 대한 상대방의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인정한 것은 정당하고, 양육비 액수도 적절하다고 판단된다”며 전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소송대리인으로 구태환 변호사가 진행했다.

한편, 두 사건의 소송을 각각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구태환 변호사와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양육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법원의 엄격한 판단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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