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경적을 울리는 차량을 급정거하게 만들어 보복운전 특수협박 혐의로 검사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운전자가 억울해하며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수사미진’을 지적했다.

헌재는 “검사는 특수협박 혐의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피해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아무런 추가 수사 없이 특수협박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유예 처분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 경적에 급정거 보복운전? 무슨 일이 있었나? 실제 피해자는?

A씨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 헌법재판소에서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3월 25일 10시 55분경 강변북로에서 여의도동 마포대교로 진입하는 구간 부근에서 차량을 운행하고 있었고, B씨는 A씨 차량의 뒤를 따라 운행하고 있었다. A씨 차량이 서행하자 B씨 차량은 A씨 차량 뒤로 가깝게 따라붙으며 경적을 울렸다. 이어서 마포대교 진입 직전에 B씨 차량이 또 크고 길게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A씨도 경적을 울리는 동시에 욕설을 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A씨 차량이 감속하자 가깝게 붙어 주행하던 B씨 차량도 추돌을 피하기 위해 일시 급정거했다. A씨가 감속한 지점은 마포대교에서 직진 중인 차량들과 합류하기 직전의 완만한 곡선 구간으로, 마포대교 보행로와 연결되는 짧은 횡단보도를 통과한 직후의 감속지점이었다.

마포대교 진입 후 오히려 B씨 차량은 빠른 속도로 차로변경을 해 A씨 차량을 추월하고 A씨 차량 앞에서 일시 급정거했다.

이에 A씨는 “B씨가 마포대교 진입 후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고 과속해 A의 차량을 추월한 뒤 A의 차량 앞에서 일부러 급정거하는 등 보복운전했다”는 취지로 블랙박스 영상을 첨부해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에 신고했다.

경찰이 B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B씨는 “A씨가 먼저 급정거했다”고 진술해 두 사람은 함께 입건됐다.

두 사람은 2021년 4월 통화했는데, B씨가 A씨에게 “급히 출근하던 중이라 마음이 급했고, A가 제동한 것을 보복운전이라고 오해해서 한 행동인데 사과하고 반성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도 “B에 대한 처벌불원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할 의사가 있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 상호 원만한 분위기에서 통화했다.

이후 B씨가 A씨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갑(A)이 을(B)의 차량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급정지하는 등 갑으로부터 협박 피해를 당한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확인하는 취지의 합의서를 작성했고, 쌍방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검사는 2021년 4월 30일 A씨(특수협박 혐의)와 B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의 피의사실에 따르면 A씨는 당시 강변북로에서 마포대교로 진입하는 구간에서 B씨가 A씨의 차량 바로 뒤에서 경적을 2회에 걸쳐 울린다는 이유로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아 B씨가 급정거하게 하는 등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듯한 태도를 보여 위험한 물건인 차량으로 특수협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서서히 브레이크를 잡았을 뿐, 급정거한 사실이 없다”며 “브레이크를 잡은 것은 마포대교 진입 구간이자 횡단보도 근처인 지점에서 서행하기 위함이었을 뿐, B씨에 대한 특수협박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러면서 “특수협박 혐의를 인정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자신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 헌법재판소 “기소유예처분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청구인(A)에게 특수협박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이 사건 감속지점은 곡선 구간이자 횡단보도 부근이고 좌측에서 오는 직진 차량과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감속할 필요성이 인정되고, 피해자 차량이 뒤에서 경적을 강하게 울리자 이에 당황해 욕설을 하며 감속한 것일 뿐 협박할 의사는 없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했다.

헌재는 “수사기관에 제출한 청구인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 의하면, 청구인 차량은 실제로 감속지점에 이르기 전부터 서행하고 있었고, 감속지점에 이르렀을 무렵 좌측 차로에서 직진 차량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던 점, 감속지점에 이르기 전부터 피해자 차량이 먼저 서행하는 청구인 차량에 가깝게 따라붙으며 경적을 울린 점, 청구인 차량이 감속지점을 지나 마포대교에 진입한 후 피해자 차량이 급하게 차로를 변경해 청구인 차량을 추월한 다음 청구인 차량 앞에서 일시 급정거하는 등 진로를 방해했음에도, 청구인은 혼잣말로 욕설을 중얼거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B씨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A씨 차량의 뒤에서 경적을 울린 직후에 A씨가 전방 횡단보도의 직진신호에도 불구하고 급정거하기에, 경적을 울린 것에 대한 보복으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헌재는 “그러나 B씨가 청구인이 협박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점, 녹취록에 따르면 B씨가 청구인에게 사과하고, 당시 청구인이 감속한 것을 보복으로 생각한 것은 오해였다는 취지로 말한 점, 청구인이 먼저 B씨를 신고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B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감속지점에서 청구인 차량이 감속하는 모습과 이로 인해 뒤따라오던 피해자 차량이 급히 감속하는 모습이 확인되나, 급히 감속하게 된 것은 피해자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운행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며 “청구인에 대한 혐의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피해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검사는 이에 대해 추가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검찰
검찰

헌재는 “청구인은 일관되게 특수협박의 고의를 부인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사정도 있으며, 청구인이 협박의 고의를 가지고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아무런 추가 수사 없이 청구인에 대해 특수협박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유예처분했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따라서 기소유예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으며,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판정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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