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숙희 대법관은 4일 “현재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저는 대법관으로서 이 분들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숙희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 취임사를 통해 “과거 샬럿 브론테를 비롯한 많은 여성작가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가명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신숙희 신임 대법관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해소 수단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간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의 상징적 의미에 걸맞은 실천적 성과를 이룩해 왔고, 대법원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며 “부족한 제가 과연 막중한 대법관 임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2월 29일 신숙희(54, 사법연수원 25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표결 처리했다. 이날 무기명 투표에서 국회 재석 의원 263명 가운데 찬성 246명, 반대 11명, 기권 6명으로 가결됐다.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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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숙희 대법관 취임사 전문>

저는 오늘 아침 낯설지 않은 대법원 건물로 출근하였습니다. 대법원 건물과 저 자신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지만, 저의 오늘은 대법관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뜻깊은 순간을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여러 대법관님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신 귀한 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시간을 내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해소 수단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간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의 상징적 의미에 걸맞은 실천적 성과를 이룩해 왔고, 대법원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과연 막중한 대법관 임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신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동료 법관들, 헌신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준 여러 법원 구성원 덕분입니다.

아이작 뉴턴이 말했듯이, 만일 제가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 탁월한 능력으로 많은 성취를 이루신 여러 선배님과 동료 법관들을 떠올립니다. 저는 그분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대한민국 사법부라는 거대한 어깨 위에 이제 막 올라선 작은 사람입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가 쓴 판결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8000건 가량 되었습니다. 그 사건들에 담겨 있을 수많은 분들의 희로애락과 그분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을 법관이라는 직업이 갖는 막중한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에어’에 나오듯이, 거리의 집들은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열정과 남자, 여자, 아이, 가족, 그리고 ‘삶’이 있습니다.

과거 샬럿 브론테를 비롯한 많은 여성작가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가명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사회적 편견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대법관으로서 이 분들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전 미국 연방대법관은 ‘당신이 마음속에 지닌 가치를 위해 싸워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따를 수 있는 방법으로 하라’고 조언하신 바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처럼 대법관으로서도, 많은 사법부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고 따를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을 늘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먼 훗날에는, 지금은 작은 사람에 불과한 저의 어깨 위에도 다른 동료들이 올라서서 좀 더 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였지만 격려를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늘 행복한 웃음과 즐거운 나날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3월 4일
대법관 신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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