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술에 취한 채 차량에서 잠을 자다 후진으로 다른 차량을 충돌하는 사고를 낸 사안에서, 법원은 사고 당시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던 상태를 종합해 고의로 운전한 것이 아니라고 봐 음주운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 후 2023년 2월 새벽 4시 25분경 영등포구 당산로 이면도로에 주차한 자신의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걸고 운전석에서 잠이 들었다.

A씨가 잠든 지 2시간 넘게 지난 오전 6시 53분쯤 차가 갑자기 10미터 정도 후진하며 A씨의 차량이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 앞 범퍼를 들이받았다.

A씨의 차는 ‘오토 홀드’(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정차 상태 유지 기능) 기능이 작동되고 있었는데, A씨가 무의식중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후진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다가가 보니 A씨는 운전석 좌석을 완전히 뒤로 젖힌 채 코를 골며 잠이 들어 있었고, 창문을 두드려도 깨어나지 못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음주 상태를 측정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102%(면허 취소 수준 0.08% 이상)의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A씨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하지만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9단독 김윤희 판사는 최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김윤희 판사는 “피고인이 새벽 4시 25분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등이 점등된 상태가 유지되다가 2분 뒤 후진으로 변경됐는데, 그와 같은 상태가 2시간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사실, 이날 새벽 6시 53분경 피고인의 차량이 갑자기 후진하며 주차돼 있던 피해자의 차량 앞 범퍼를 들이받았는데, 당시 피고인은 차량 내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며 “차량 충돌 직후 피해자가 피고인의 차량으로 다가갔는데, 피고인은 운전석 좌석을 완전히 뒤로 젖혀 잠이 들어 있었고, 피해자가 창문을 두드려도 깨어나지 않아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윤희 판사는 “피고인은 사고 발생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차에서

계속 잠을 자고 있었던 사실 등을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차량이 움직인 것이 고의의 운전행위에 의한 것으로 보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따라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대법원 판례는 “도로교통법에서 말하는 ‘운전’의 개념은 고의의 운전행위만을 의미하고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의 의지나 관여 없이 자동차가 움직인 경우에는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의도 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자동차 원동기의 시동을 걸었는데, 실수로 기어 등 자동차의 발진에 필요한 장치를 건드려 원동기의 추진력에 의하여 자동차가 움직이거나 또는 불안전한 주차상태나 도로 여건 등으로 인해 자동차가 움직이게 된 경우는 자동차의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2004도1109)한 바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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