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무죄 판결, 사법의 독립 포기를 선언한 법원의 판결을 엄중히 규탄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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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논평에서 민변(회장 조영선)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월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전부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며 “법관 사찰, 연구회 와해 시도, 블랙리스트 관리 등을 통해 개별 법관의 인권을 침해한 것은 물론,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재판개입과 외교부 등 정부와의 재판거래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중대하게 훼손한 사법농단 사건의 책임 법관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사법농단 사건의 재발 방지는커녕, 양승태 전 대법관 등 관련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범죄행위를 벌할 수 없다고 선언한 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1심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개입 관련 혐의에 대해, 대법원장 등이 개별적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으므로 재판에 개입해도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형식적 논리를 내세워 무죄를 선고했다”며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 법령상 대법원장 등에게 개별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할 수 없기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재판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당연한 요청으로, 법치주의의 중핵을 이룬다”고 말했다.

민변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재판의 기능은 어떠한 외부의 간섭 없이 헌법과 법률,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적인 심판으로만 보장될 수 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재판 독립에 관한 헌법과 법률의 보호가 재판개입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그러나 형식적인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1심 판결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헌법 제103조가 명시적으로 재판의 독립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개별 재판에 개입하기 위해 실행한 구체적 행위를 지시할 외관상의 사법행정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일반적 직무권한’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변은 “특히 대법원은 수사 및 감사 등에 지시하거나 관여한 고위 공무원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해 왔다”며 “재판개입은 헌법에 의해 직접 보장되는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재판에 개입하는 유무형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개입한 고위 법관들에게만 유독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변은 “또한 1심 법원은 법관 사찰, 블랙리스트 관리, 헌법재판소 재판 관여, 연구회 와해 시도, 재판거래 정황 등 나머지 범죄혐의에 대해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권한의 남용이 아니라든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든지,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든지 등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부정했다”며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권리 침해를 야기한 직권행사가 존재함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처럼 사법농단이 실재했음에도 형식적인 법리해석과 적용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등에게 범죄성립을 인정하지 않은 1심 법원의 판단은 구체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제5차 정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된 자들에 대한 적절한 제재가 이루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효과적으로 조사, 기소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로 제재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국제인권기준의 관점에서도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의 독립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고, 따라서 이에 대해 법적책임을 묻는 것은 법원을 비롯한 국가의 법적 의무”라며 “따라서 관련 문건, 정황, 그리고 재판개입의 결과까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게 형식적 논리로서 책임을 묻지 않은 1심 법원의 판단은 국제인권기준에도 현저히 반한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사법농단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법원은 스스로 사법의 독립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국민이 아닌 정부를 위한 법원, 양심에 따른 독립적 재판이 아닌 권력을 향한 재판을 도모한 행위들, 법관 사찰, 재판 개입, 연구회 탄압과 같은 사법부 내 권력 남용과 인권침해 등 사법농단에서 드러난 모든 행위들에 관하여 최고 사법행정권자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민변은 “이러한 행위들은 사법의 독립성 침해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당사자들의 기본권 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책임성의 담보 없이는 사법의 독립성은 확보할 수 없다. 이번 판결로 ‘사법농단’은 더욱 은밀한 방식으로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변은 “우리 모임은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번 판결로 말미암은 부정의를 조속히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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