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계엄령에 따라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순화교육과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에 대해 국가가 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돼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했으므로, 국가가 피해자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80년 7월 29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사회악 일소 및 순화 교육을 명분으로 삼청계획 5호를 입안했고, 8월 4일 계엄포고가 발령됐다.

계엄포고에 따라 계엄사령부 지휘 아래 군ㆍ경이 체포영장ㆍ구속영장 없이 6만여 명의 대상자를 검거하고, 그 중 약 4만 명을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에 수용해 순화교육, 근로봉사, 보호감호를 시행했고, 그 와중에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A씨는 1980년 8월 21일 대구 북부경찰서에 검거 구금돼 B급 판정을 받아 1980년 9월 5일부터 10월 4일까지 군부대에서 순화교육을 받았고, 근로봉사대에 배치돼 강제노역을 하던 중 청송 보호감호소를 거쳐 1983년 5월 1일 퇴소했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7월 “A씨가 1980년 8월 4일부터 11월 15일까지 삼청교육을 받았음이 규명됐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A씨에게 통보했다.

A씨는 2004년 11월 18일 삼청교육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상금을 신청해 2005년 7월 20일 위원회로부터 장애보상금으로 1110만원을 받았다. 이후 A씨는 2023년 5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마크
법원 마크

대구지방법원 제11민사단독 김희동 부장판사는 지난 1월 9일 “피고(대한민국)는 원고에게 1억 5000만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계엄포고의 효력에 대해 김희동 부장판사는 “이 계엄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되었고, 내용도 신체의 자유, 거주ㆍ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므로,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미 유신헌법, 현행 헌법, 구 계엄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김희동 부장판사는 “원고는 계엄포고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돼 삼청교육대에서 순화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으로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했으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이 소송은 원고가 출소한 1983년 5월부터 3년이 경과한 시점에 제기됐으므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인해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희동 부장판사는 “원고로서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2023년 2월 7일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정하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을 하고 이를 원고에게 통지함으로써 비로소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명백히 인식했다고 보일 뿐”이라며 “따라서 원고가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된 2023년 5월 9일 소를 제기한 사실은 명백하므로,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손해배상 위자료에 대해 김희동 부장판사는 “▲피고(대한민국)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가 상당한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다수 공무원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관여로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점 ▲공무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자행된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 예방할 필요성 등도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중요한 참작사유로 고려되어야 하는 점 ▲위 불법행위 이후 오랜 기간 손해배상이 지연되었고, 물가와 통화가치가 크게 변한 점 등을 종합하면 위자료 액수는 1억 5000만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지연손해금에 대해 김희동 부장판사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그 채무 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피고의 불법행위 시점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까지 40년가량이 경과해, 위자료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 국민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의 상승 폭을 반영했으므로, 변론종결일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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