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배드파더스(Bad Fathers)’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한 운영자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에 대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신상공개가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고, 양육비채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매우 커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법원에 따르면 배드파더스는 2018년 7월 양육비채권자의 제보를 받아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설립된 인터넷 사이트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이름, 출생년도, 거주 지역, 직업 내지 직장명, 얼굴 사진, 전화번호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게시글이 등록돼 있다.

배드파더스는 제보자로부터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에 대한 자료를 전달받아 사이트에 게시 글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했는데,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양육비 미지급 사유 등에 대한 확인절차를 거치지는 않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별도의 회원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게시 글을 열람할 수 있고, 하루 평균 방문자가 약 7~8만 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배드파파스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후 다수의 양육비 미지급자가 양육비를 지급하기도 했다.

배드파더스 운영자 A씨는 제보를 받기 위해 사이트에 자신의 전화번호 및 이메일 주소 등을 게시하고, 제보자들로부터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사이트에 게시되도록 했다. 신상정보가 게시된 사람이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이러한 불만을 접수해 처리해줬다.

A씨는 2018년 9월 배드파더스에 이혼한 C씨의 사진, 실명, 거주지 등이 포함된 내용으로 글이 게시되게 하는 등 피해자 4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인 수원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2020년 1월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 재판부는 배심원 7명의 무죄 평결을 존중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2심)인 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2021년 12월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선고유예는 범죄 정황이 경미한 자에게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이트 운영의 주된 목적은 ‘사적 압박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신속하게 간접 강제하기 위함’인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는 신상정보의 내용이 지나쳐 양육비 채무자인 피해자들의 인격권 및 명예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점, 사이트의 신상공개 요건, 시기 및 기간 등 기준이 임의적이고 의견청취 등 사전 확인 및 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의 사이트 글 게시 행위에 대해 비방할 목적을 인정할 수 있다”고 유죄로 봤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 대법원,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판결 확정한 판단은?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는데,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월 4일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정보 등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한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이트의 신상정보 공개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알린 것은 결과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이트의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 개인의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 및 명예를 훼손하고 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로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이 사이트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이 양육비를 주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시해 대외적으로 신상정보 공개의 취지를 양육비 추심으로 밝히고 있는 점, 이 사이트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를 목록화해 보여주는 것은 개별 양육비채권자의 양육비채무자에 대한 압박 의사를 집합적으로 대행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점, 실제로 이 사이트에서 신상정보가 공개되자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 다수의 양육비 미지급자가 양육비를 지급하게 되었고, 이 사이트도 이러한 점을 염두하고 얼굴 사진을 비롯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신상정보를 자세하게 밝히면서 일반인의 접근을 용이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이트는 양육비 지급을 일응의 조건 성취나 목적 달성으로 취급해 양육비 지급사실이 확인될 경우에는 신상정보 공개 글을 삭제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신상정보 공개가 양육비채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이트에서 신상정보를 공개하면서 공개 여부 결정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이나 양육비채무자에 대한 사전 확인절차를 두지 않았고, 양육비를 지급할 기회를 부여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한번 훼손된 인격권 및 명예는 완전하게 회복되기 어렵고, 양육비를 미지급하게 된 데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수 있음에도, 사전에 양육비 미지급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개별적 사정이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은 채무불이행자 공개 제도 등과 비교할 때 볼 때 양육비채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커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신상정보의 공개로 훼손되는 인격권 등 침해의 정도를 살필 때에는 공개되는 신상정보가 극도로 내밀한 영역인지, 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지와 같은 공개되는 신상정보의 내용, 특성이나, 공개의 목적과의 관련성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 사이트에서 공개된 신상정보인 얼굴사진, 구체적인 직장명, 전화번호는 공개 시 양육비채무자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반면, 피고인들에게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더라도, 익명처리가 된 자료 제공 또는 통계수치의 제시 등으로도 위와 같은 목적 달성이 가능하므로 얼굴 사진, 직장명, 전화번호의 공개가 위와 같은 공익적인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해 양육비를 즉시 지급하도록 강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볼 급박한 사정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이트에서 얼굴 사진, 구체적인 직장명, 전화번호를 공개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자들의 피해의 정도가 현저히 크고, 위와 같은 상세한 정보까지 공개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와 함께 대법원 재판부는 “이 사이트를 통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데에는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을 수 있으나, 피해자들은 직업, 사회적 지위ㆍ활동ㆍ영향력의 측면에서 공적 인물이라거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을 수인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한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전파성이 강한 정보통신망을 통한 공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양육비 지급에 관한 법적책임을 고려하더라도 피해의 정도가 지나치게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사이트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글을 게시한 부분에 대해 피고인들에게 비방의 목적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죄에서 ‘비방할 목적’ 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사적 단체나 사인이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사람을 비방할 목적’ 판단 시 비교ㆍ형량할 이익과 고려할 사항들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보관실은 “이 사건에서 신상정보 공개의 목적, 공개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과정, 공개의 방식ㆍ상대방ㆍ기간, 공개되는 신상정보의 내용ㆍ특성과 공개의 목적과의 관련성, 신상공개로 인한 영향력,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나 피해의 정도 등을 두루 고려해 비방할 목적 여부를 판단했다”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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