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에버랜드가 일부 놀이기구에 시각장애인 탑승을 제한한 사건에서 법원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로 판단해 위자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판결문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김OO씨 등 6명은 2015년 5월 용인 에버랜드에 자유이용권으로 입장해 롤러코스터인 T-익스프레스에 탑승하려고 했는데, 직원으로부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했다.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일부 놀이기구들의 탑승을 거부한 것은 놀이기구 이용과 관련된 안전수칙 및 탑승제한 규정 등을 정한 자체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

이에 김씨 등은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을 상대로 2015년 8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롤러코스터 등)에 대한 이용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장애인 차별행위”라며 “장애인 차별행위로 인해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므로, 삼성물산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놀이기구들은 고속주행, 높은 고도에서 낙하, 예측할 수 없는 회전 등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상황인지 및 반사적 방어의 속도가 느린 시각장애인이 탑승하면 신체에 큰 충격이 가해져 위험한 점,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승ㆍ하차 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비상대피 상황의 경우 탈출 및 구조상 어려움이 있는 등의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점,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들에 탑승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고 이미지 손상으로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는 점, 유원시설업자는 관광진흥법 관련 규정에 따라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이용자의 탑승을 거부 또는 제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이용을 제한하는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따라서 피고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을 제한한 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는 2018년 10월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직접 에버랜드를 방문해 현장검증을 실시한 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삼성물산에서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 제19-3민사부(재판장 배용준 부장판사)는 2023년 11월 8일 김OO씨 등 3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삼성물산은 원고들에게 각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한 에버랜드가 자체적으로 정한 안전수칙 규정에서 “신체적, 시각적으로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이용이 제한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등의 문구에서 “시각적” 부분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재판부는 만일 삼성물산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원고들에게 의무 완료일까지 하루 1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가이드북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들에 대한 이용을 제한해 원고들이 롤러코스터 등에 탑승하는 것을 거부한 사실, 원고들의 시각장애를 사유로 장애인 아닌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그 차별에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정한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놀이기구 탑승으로 인한 신체적 위험성 발생 여부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위험등급 및 시각장애인에 대한 신체적 위험성 정도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차등적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때 본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위험성이 비시각장애인의 경우보다 특별히 더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제1심 감정인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각 신체에 중력가속도가 다르게 작용하는지 비교하기 위해, 평균적 신체조건을 가진 비시각장애인 6인을 3인씩 2팀으로 나누어 놀이기구들에 탑승하게 한 다음,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상태와 안대를 써서 시각이 차단된 상태로 피실험자의 각 신체에 작용하는 중력가속도의 값을 측정했다. 감정인은 각 놀이기구마다 나타나는 고유의 패턴에 따라 구간을 나누어 측정된 중력가속도 값을 비교했으나, 안대를 착용한 쪽에 작용하는 중력가속도가 더 크다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 놀이기구 사고 등으로 인한 위험성 여부

삼성물산은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동선 이동과정 및 승하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 놀이기구 사고 및 고장 등으로 인한 비상대피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탑승을 금지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위험성은 비시각장애인의 탑승에 경우에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위험성은 이 사건 놀이기구들 탑승 전 피고 측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전 안내, 승하차 및 동승 서비스 등의 조치를 통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작동방식 등에 비추어 사고의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이고, 위 놀이기구들은 탑승자가 안전장치에 의해 좌석에 단단히 고정돼 운행되는 구조로 정상적인 시각을 가지더라도 운행 도중 탑승자가 취할 수 있는 움직임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시각장애인에게만 특별히 사고 위험이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원 감정인은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들의 대기소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가능성, 자동문에 팔, 다리가 끼일 가능성, 좁은 계단으로 다른 사람들이 급히 내려오는 와중에 시각장애인이 밀릴 가능성, 시각장애인이 팔을 밖으로 내밀어 부상을 입을 가능성 내지 운영요원을 충격할 가능성 등을 위험요소를 제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가 사전에 시각장애인에게 위와 같은 위험요소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촉각타일 설치나 시각장애인 지팡이 활용, 길 안내 등의 조치를 통해 그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위험요소만을 들어 시각장애인의 위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감정인은 또 놀이기구 승하차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로서 시각장애인이 열차 맨 앞 좌석에 타려다가 트랙 사이로 추락할 가능성, 하차시 반대 방향으로 내려 추락할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은 동반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동반자가 없더라도 피고 직원이 모든 탑승자의 승하차를 안내하고,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위험요소는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제1심 법원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현장검증결과 1급 시각장애인인 원고와 검증참가인 등 역시 별다른 이상 없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비상대피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탈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 회사 손해배상책임 및 이미지 손상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인지 여부

삼성물산은 “시각장애인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탑승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고, 이미지 손상으로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이용제한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는 시각장애인에게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정보 및 위험성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사고 예방 등을 위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해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이는 점, 시각장애인은 위와 같은 정보 및 설명을 바탕으로 본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탑승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러한 선택은 존중의 대상이자 동시에 책임의 근거도 되므로, 놀이기구 사고 발생 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부담 여부 및 배상 범위를 정함에 있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관광진흥법에 따른 조치인지 여부

삼성물산은 “유원시설업자는 운행 전 정신적ㆍ신체적으로 부적합하다고 인정되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이용자에 대해 유기기구의 이용을 거부하거나 제한할 의무가 있고, 피고는 위 법령에 따른 조치로 원고들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이용을 제한한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한 탑승이 일률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신체적 위험을 초래한다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현행 관광진흥법은 ‘유원시설업을 경영하는 자는 장애인이 유원시설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유기시설 및 유기기구를 설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신설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로서는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들 탑승을 단순히 제한할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함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각했다.

◆ 손해배상책임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는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행위를 했으므로,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된다”며 “나아가 차별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충분히 인정되므로, 피고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정한 손해배상책임에 따라 원고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고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에 정한 법원의 적극적 조치로 시각장애인의 이 사건 놀이기구에 대한 탑승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으로 가이드북을 수정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 손해배상 범위

재판부는 “이 사건 차별행위는 피고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한 것으로, 시각장애인을 차별할 목적으로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이용을 제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피고가 다른 놀이기구들에 대해 ‘장애인 탑승 예약제도’를 운영하는 등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점, 피고가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하게 된 경위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면, 피고가 원고들에게 배상할 손해배상금의 액수는 각 2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삼성물산은 항소심 판결에 승복해 차별을 시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2023년 12월 1일 판결이 확정됐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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