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이라 주장하였더라도 사실의 적시가 아니고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돼 명예훼손 아니다(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22다280283, 2023다220790 판결)

사례)

원고들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의뢰를 받고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사건 노동자상)을 제작하여 2016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일본 교토, 서울, 대전 등지에 순차 설치한 조각가 부부이다. 피고들은 시의회의원(2022다280283) 및 시민운동가(2023다220790)로, 이 사건 노동자상이 실제로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집회 또는 기자회견 등에서 발언하였다(‘이 사건 발언들’). 원고들은 피고들의 이 사건 발언들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또는 모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심판결의 이유는 피고의 이 사건 발언들은 원고들을 그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는 단정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이자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허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해자 특정 및 허위사실 요건을 인정하였으며, 원고들의 노동자상 제작 과정을 몰랐음에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로 오인될 수 있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였고,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사정이 없음을 이유로 위법성조각사유를 부정하면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에 피고가 상고하였다.

2022다280283 사건의 경우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고, 원고들이 항소한 원심에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위자료로 2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2023다220790사건은 1심에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5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피고가 항소한 원심판결은 1심판결을 변경해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원심의 판결이유는, 발언 내용상 원고들을 피해자로 특정할 수는 있으나,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증거에 의하여 그 진위의 입증이 가능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로 볼 수는 없고, 이 사건 발언들은 이 사건 노동자상이 일본인 노동자들의 사진과 흡사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발언의 허위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고들에게 있음에도 그에 관한 충분한 증명이 없으므로 피해자 특정을 인정하면서도 허위사실 요건을 부정하였다.

또한 이 사건 노동자상은 공공의 관심 사항으로 관련 발언에 공익성이 인정되고, 교과서에서 조차 일본인 노동자들의 사진을 강제징용된 조선인으로 소개하고 있었던 사정 등에 비추어 발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며 위법성조각사유를 인정하였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 모두 부정하였다. 이에 원고들이 상고하였다.

​해설)

명예훼손에 의한 인격권 침해로 인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들의 언동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여야 한다. 명예훼손은 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인격에 대한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공연히, 즉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야 한다(형법 제307조). 그 방법에는 제한이 없으며, 그로 인해 반드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음을 요하지 아니하고, 저하케 하는 위험상태를 발생시킴으로써 족하다. 형법상 명예라함은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말한다. 윤리적인 것은 물론 사람의 신분ㆍ성격ㆍ혈통ㆍ용모ㆍ지식ㆍ능력ㆍ직업ㆍ건강ㆍ품성ㆍ덕행ㆍ명성 등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 즉 외부적 명예를 의미를 뜻한다.

자기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 즉 명예의식 또는 명예감정을 침해하는 행위는 명예가 아니라 모욕죄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의 경제적 지위(지급능력 또는 지급의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서의 신용은 명예의 일종이나, 형법은 명예훼손과는 별도로 신용훼손을 신용훼손죄로 처벌하고 있으므로 명예에서 제외하고 있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적시된 사실은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2188 판결 등 참조).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나 진술을 뜻하며,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증명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지 아니면 의견인지를 구별할 때에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증명가능성, 문제 된 말이 사용된 문맥, 표현이 이루어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8. 9. 28. 선고 2018도11491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위 사례의 경우 이 사건 발언들이 허위사실의 적시인지 또는 의견의 표명인지, 피고인들의 이 사건 발언들이 진실한 사실이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해당 발언들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의 제기로 명예훼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많고, 이를 허위라고 볼 원고들의 증명 또한 부족하며, 위법성을 조각할 사유를 인정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이와 달리 명예훼손책임을 인정하여 위자료 배상을 명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22다280283 판결), 명예훼손 책임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23다220790 판결).

​대법원은 이 사건 발언들이 허위사실의 적시인지 또는 의견의 표명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순수한 의견의 표명 자체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데,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고, 또한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그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들에게 그 허위성에 대한 증명 책임이 있으며, ②이 사건 발언들은, 그 전체적인 맥락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노동자상이 일본 내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구출된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거나 양자 간에 상호 유사성이 있다는 피고들의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고, ③이 사건 노동자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하였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제작자인 원고들의 내심의 의사에 기반한 창작 활동을 거쳐 그 결과물만 보는 제3자로서는 이를 알 수가 없고, 그 진위를 증거에 의하여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④예술작품이 어떠한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여 그에 따른 비평의 대상이 되고, 비평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등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섣불리 이를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⑤결국 이 사건 발언들은 통상적인 어휘의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의미를 확정할 경우,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한 의혹의 제기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많으므로 명예훼손죄가 적용되기 위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

​진실한 사실이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①적시된 사실의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없다는 항변의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피고 측에서 부담하고, ②이 사건 노동자상은 공적 공간에 설치되어 그 철거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된 공론을 이끌어낸 조각상 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③이 사건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교과서나 국립역사관 내 설치물에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바 있었고, 이후 그 인물들이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순차 교체되거나 삭제되기에 이른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발언들이 설혹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들로서는 위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는 점을 들어 위법성조각사유를 인정하였다.

​명예훼손에 있어서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 되어야 한다는 법리는 대법원에서 여러차례 언급된 바 있다. 우리 형법이 사실의 적시를 전제로 명예훼손죄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 내용이 변경되지 않는 한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예술작품에서의 표현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느냐의 문제는 증거에 의해서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어렵다. 예술작품의 개인적ㆍ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가에게는 창작의 자유가 인정되듯이 예술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피고들의 이 사건 노동자상에 대한 이 사건 발언들이 구체적 사실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의혹제기에 불과하느냐의 문제는 증거에 의해서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느냐와 관련돼 있다. 입증이 가능하다면 사실의 적시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노동자상이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는 원고가 입증하여야 한다. 이 사건 노동자상의 구체적인 모델이 무엇인지 등의 방법에 의한 입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체적인 사실로 입증되더라도 피고들의 이 사건 발언이 허위라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 이 사건 노동자상이 공적인 영역에 설치돼 있고,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상 이에 대한 비판은 공적인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고들은 이 사건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교과서나 국립역사관 내 설치물에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사실, 이후 그 인물들이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순차 교체되거나 삭제되기에 이른 사실 등에 비춰보면 피고들의 이 사건 발언들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논의돼 왔던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피고들의 이 사건 발언이 이 사건 노동자상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욕적인 발언에 해당하고, 오로지 비난을 목적으로 이 사건 발언들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입증이 없는 한 피고들의 발언들을 명예훼손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대법원은 소부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돼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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