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병원서 MRI 촬영을 위해 걸어서 들어갔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사지마비 장해 진단을 받은 사건에서, 보험사들은 기존 질병의 악화에 의한 것이지 우발적 외래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보험사들이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는 “일반적으로 의료기관 내 처치 중 발생한 사고는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에서 보상을 받기 힘들다”며 “이번 사건은 의료기관 내 발생한 재난임에도 약관상 ‘처치 당시에는 재난의 언급이 없었으나 환자에게 이상반응이나 합병증을 일으키게 한 외과적 및 기타 내과적 처치’에 해당한다고 봐 보험금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0년에 삼성생명보험, 2011년에는 신한라이프생명보험, 2018년에는 삼성화재해상보험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2015년 3월 요통, 요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진단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2018년 11월 A씨는 병원을 방문해 어깨 통증 및 양팔의 저림증세를 호소해 ‘경추 경막외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그런데 1시간 뒤 운전해 집에 오는 길에 팔에 감각이 없고.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전화하니, ‘신경차단술에 사용된 약물이 흡수될 때까지 신경을 일시적으로 누를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증상이 지속될 경우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A씨는 다음날 병원에 가서 전날 증상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경추간판탈출증 의증 진단을 하고 정확한 상태 파악을 위해 MRI 검사를 받도록 했다. A씨는 MRI 촬영 후 기계 내에서 사지에 마비 증상을 보이면서 일어서지 못해 의료침대로 병실로 옮겨졌다.

이후 경추 추간판 절제술 및 유합술을 받았으나, A씨는 지속적인 호흡곤란 증세 등으로 기관절개술을 받았다. A씨는 계속 치료를 받았으나 2019년 5월 척수병증을 동반한 경추간판장애, 상세불명의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A씨는 MRI 촬영 직후 급격한 사지마비 증상이 발생했고, 이에 다음날 경추 5~6번간 추간판절제술 등을 받았으나 수술 이후에도 크게 호전 없이 사지마비 증상 등이 계속되면서 현재의 장해상태가 됐다.

A씨 측은 “의료진은 MRI 촬영 당시 고통을 호소함에도 경추 신경을 눌러 사지마비 증상을 초래할 수 있는 자세를 약 25분간 유지하도록 해 경추 5~6번간 추간판 파열, 척추손상 등의 상해가 발생했다”며 “이러한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 질병 분류상으로는 ‘처치 당시에는 재난의 언급이 없었으나 환자에게 이상반응이나 합병증을 일으키게 한 외과적 및 기타 내파적 처지(Y83~84)’에 해당하는 사고로 원고가 장해지급률 80% 이상의 장해상태가 됐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삼성생명, 신한라이프생명, 삼성화재는 “A씨는 기존의 추간판탈출증, 경추협착 등의 질병에 의해 마비 증상이 와서 장해상태에 이른 것일 뿐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의해 장해상태가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또 삼성생명과 신한라이프생명은 “설령 MRI 촬영 당시 A씨의 자세 등이 영향을 미쳤더라도 이는 경미한 외부 요인에 불과해 보험약관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삼성화재는 “MRI 촬영 당시 의료진의 고의나 과실이 없고, 어떠한 수술이나 처치 등도 실시하지 않은 채 단순히 MRI 촬영만 한 것에 불과한데, A씨의 기존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으로 인해 증상이 악화돼 장해가 발생한 것이므로,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보험사들이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최규연 부장판사)는 최근 MRI 촬영 후 사지마비가 된 A씨가 보험사들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삼성생명보험은 1억 7781만원, 신한라이프생명보험은 3000만원, 삼성화재해상보험은 20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원고의 장해에 기여한 기존 질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장해를 유발한 중대하거나 직접적인 원인은 MRI 촬영이라는 외적 요인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이 장해는 삼성생명, 신한라이프의 보험계약상 ‘재해’이자, 삼성화재 보험계약상 ‘상해’인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으로, 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2015년 3월 요통 치료를 받았고, 2015년 12월 이후로는 추간판협착 등의 진단을 받아 2018년 11월까지 요추에 경막외 신경차단술 등의 치료를 받기는 했다”면서도 “그러나 당시까지 추간판협착 등의 진단을 받았을 뿐 ‘경추 추간판 파열’ 진단을 받은 사실이 없고, 그때까지 호소한 증세는 하지 통증이나 저림 등으로 보이고, 하지와 상지 모두 마비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짚었다.

이어 “원고는 MRI 촬영 직전까지 걸어 다니는 등 거동이 가능했으나, MRI 촬영 직후 급격히 사지마비 증상이 발생했고, MRI 촬영과 원고에게 발생한 사지마비 증상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입할 만한 시간적 간극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A씨의 신체감정의 의견도 살폈다. 감정의는 “보행 가능한 정도에서 완전마비까지 갑자기 악화되는 것은 급성출혈이 있는 경우 발생할 수 있으나, 추간판탈출증의 자연경과적 악화에 의한 척수손상에서는 드물다”고 했고, 특히 “A씨와 같이 1시간 내에 보행 가능한 정도에서 완전마비로 진행하는 것은 흔하지 않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근력 등급은 순차적으로 감소해, 최소 수 시간에서 수일이 소요된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에 의하면 MRI 촬영 중 발생한 상애 없이 원고의 기존 질병만으로 촬영 직후 급격한 사지마비 증상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진료기록감정의는 MRI 촬영 중 자세에 따른 과신전이 원고의 사지마비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신체감정의는 추간판탈출증과 이로 인한 척수압박이 매우 심한 경우에는 20~30분간의 지속적인 경추의 중립자세로도 척수압박 및 그로 인한 마비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의견들을 종합하면, MRI 촬영이 외적 요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해 사고 내지는 재해가 될 수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MRI 촬영이 원고의 질병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수술이나 처치 등이 아니라고 해서 외래의 사고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런 사정을 들어 이 사건 장해가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MRI 촬영에 의한 이 장해는 한국표준질병ㆍ사인분류표상 ‘외과적 및 내과적 치료 중 환자의 재난(Y60~Y69)’이 아닌 ‘처치 당시에는 재난의 언급이 없었으나 환자에게 이상반응이나 후에 합병증을 일으키게 한 외과적 및 내과적 처치(Y83~84)’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사고여서 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삼성생명과 신한라이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MRI 촬영으로 원고에게 사지마비 등이 발생한 것은 보험금 지급 대상인 재해에 해당한다”며 “삼성생명과 신한라이프는 보장항목에서 정한 보험금으로 삼성생명은 1억 7781만원, 신한라이프는 30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화재 보장보험은 상해사고로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80% 장해지급률에 해당하는 장해상태가 됐을 때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정하고 있고, 약관상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 한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은 정하고 있지 않은 점, 이 장해는 MRI 촬영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한 것으로 삼성화재는 보험금 20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 승소 판결

한편 A씨의 의뢰로 사건을 맡아 소송을 대리한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일반적으로 의료기관 내 처치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에서 보상을 받기 힘들다”며 “이번 사건은 의료기관 내 발생한 재난임에도 약관상 ‘처치 당시에는 재난의 언급이 없었으나 환자에게 이상반응이나 합병증을 일으키게 한 외과적 및 기타 내과적 처치’에 해당한다고 봐 보험금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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