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약을 과다 복용했다가 사망한 사건에서, 보험사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다 복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망인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유족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6월 안방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발견됐는데, 당시 입술이 파랗고 숨소리가 이상해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이에 유족이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는데, 한화손해보험은 ‘극단적 선택’은 “보상하지 않는 손해”라며 거부했다.

유족은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를 선임해 사건을 맡기며 소송을 진행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9단독 유정훈 판사는 최근 망인의 자녀 2명이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한화손해보험은 원고들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유정훈 판사는 “망인에게 여러 종류의 약물이 검출됐으나 모두 망인이 그 무렵 정신과에서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인 점, 망인에게 치사량 이상의 약물은 발견되지 않은 점, 단순히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한다고 사망의 결과를 일으킨다고 볼 수 없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역시 망인에게 검출된 여러 약물 사이의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을 뿐 상호작용의 존재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으며, 단지 위 가능성과 다른 사망의 원인이 부존재한다는 점에서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유정훈 판사는 “망인은 여러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다가 약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망인이 예견하지 않았는데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사고”라며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기간 중에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써 사고일로부터 2년 이내에 사망’한 것에 해당한다”고 봤다.

유정훈 판사는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화손해보험은 보험계약 일반약관에 따라 망인이 일반상해 사고로 사망시 보험가입금액 1억원을 망인의 상속인인 원고들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화손해보험은 “망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일으킨 사고”, “이 사고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보험계약 일반약관에 따라 보험금 지급 의무는 면책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정훈 판사는 “망인의 혈액에서 여러 종류의 약물이 검출되고, 일부는 치료농도를 상회하거나 독성농도였으나, 치사농도에 이른 약물은 없는바, 망인이 짧은 기간에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기는 했으나 특정 약을 치사량에 이를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복용한 것은 아니다”고 봤다.

유정훈 판사는 “망인의 혈액에서 검출된 여러 종류의 약물은 대부분 망인이 사고 무렵 정신과에서 정상적으로 처방을 받은 약물로 보이고, 따라서 망인이 단지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처방받은 여러 종류의 약을 다소 과다하게 복용했다가 의도하지 않은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유정훈 판사는 “망인이 남긴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고 이전에 망인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거나 그와 같은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남겼다는 등의 정황이 보이지 않는 점, 한화손해보험은 망인의 극단적 선택의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망인이 평소 신병을 비관해 왔다는 등의 정황 역시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유정훈 판사는 “망인이 짧은 기간에 여러 종류의 약을 과다하게 복용했다는 정황을 제외하고는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다른 정황들이 존재한다거나 증명된 바 없고, 극단적 선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는 부족하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한화손해보험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망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이 일반인의 상식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결국 한화손해보험의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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