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이를 전파매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법률조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최초의 사례다.

아울러 헌법재판관 4명이 합헌, 5명이 위헌으로 판단했다. 위헌 의견이 다수였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 6명에 미달해 합헌 결정이 났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후천성면역결필증 에이즈(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인체명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질병관리청에 감염인으로 신고된 사람이다.

그런데 A씨는 2018년 7월 감염인으로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숨긴 채 피해자와 구강성교 등의 유사성교행위를 함으로써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전파매개행위를 했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법원은 처벌의 근거 법률인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 제25조 제2호에 대해 2019년 12월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5조 제2호는 벌칙 조항으로 제19조를 위반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헌법재판소는 10월 26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등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위헌 의견을 밝힌 이들이 5명으로 합헌 의견보다 많았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 합헌의견(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

4명의 헌법재판관은 “비감염인의 건강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감염인과 성행위를 하는 상대방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 조항은 의학적 치료를 받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전파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감염인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인임을 알리고 한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의학적 치료를 받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전파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감염인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그의 동의를 받은 경우 예방조치 없이도 성행위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관들은 특히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감염인에게는 자유로운 방식의 성행위가 금지되므로 그의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제한될 수 있다”며 “그러나 상대방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감염인과의 성행위로 인하여 완치가 불가능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평생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등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짚었다.

4명의 재판관들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감염인의 제한 없는 방식의 성행위 등과 같은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제약되는 것에 비해 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공익을 달성하는 것은 더욱 중대하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감염인의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합헌으로 판단했다.

◆ 일부위헌(유남석,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5명의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감염인이나 전파매개행위라는 용어에 대해 어떠한 예외를 규정하거나 금지 및 처벌의 범위를 한정하는 표지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감염상태를 알고 있는 감염인이라면 치료 이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그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감염인 중에서도 의료인의 처방에 따른 치료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까지도 예외 없이 전부 금지 및 처벌대상으로 포함함으로써 이들의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며 “반면 이들의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전파 방지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재판관들은 “따라서 심판대상조항 중 의료인의 처방에 따른 치료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를 금지 및 처벌하는 부분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이들의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위헌으로 판단했다.

◆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

헌재 공보관실은 “이 사건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최초의 사례로 변론을 실시해 질병관리청 당해사건 피고인의 대리인, 참고인(의료전문가, 교수)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공보관실은 “심판대상조항에 대한 합헌의견이 재판관 4인, 일부위헌의견이 재판관 5인으로, 일부위헌의견이 다수이기는 하나 위헌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 6인에는 이르지 못해 합헌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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