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군대에서 동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아 합헌이라고 판정했다.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10월 26일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군형법 제26조의5 중 ‘그 밖의 추행’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했다.

◆ 헌재 법정의견(유남석,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 합헌의견)

재판관 다수의견은 “군대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질서체계 하에 있으므로 상급자로서의 우월적 지위나 권력 등을 이용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가 이루어지기 쉽고, 이는 결국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ㆍ구체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따라서 직접적인 폭행 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에 의한 경우 또는 자발적 의사합치가 없는 동성 군인 사이의 추행에 대해서는 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뿐만 아니라 동성 군인 사이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근무장소나 임무수행 중에 이루어진다면, 이는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는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를 처벌한다고 해도 과도한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수의견은 “군인에 대한 행정제재만으로 군 기강 확립에 있어서 형사처벌과 동등하거나 유사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조항의 최대형량이 징역 2년으로서, 그 상한이 비교적 높지 않으며 그 형의 하한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행위 태양이나 불법의 정도 행위자의 죄질 등에 비추어 행위자의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이 선고될 수 있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이 사건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평등원칙 위배 여부

재판관 다수의견은 “절대 다수의 군 병력은 여전히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은 생활관이나 샤워실 등 생활공간까지 모두 공유하면서 장기간의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해야 하므로 일반 사회와 비교해 동성 군인 사이에 성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동성 군인 간의 성적 교섭행위를 방치할 경우 군대의 엄격한 명령체계나 위계질서는 위태로워지고 구성원 간의 반목과 분열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다수의견은 “이와 같은 점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조항이 이성 군인과 달리 동성 군인 간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위헌 반대의견(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4명의 재판관은 “이 사건 조항은 군형법 제92조의6의 적용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동성 군인 상호간 성적 행위에 관한 의사합치는 있었으나 생활관 내에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등 사적 공간이 아닌 곳에서의 행위가 이 조항의 추행에 해당해 처벌되는지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재판관들은 “법정의견과 같이 이 사건 조항의 ‘그 밖의 추행’을 해석하면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요건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이러한 개념 자체가 포괄적이고 주관적이므로 이 사건 조항의 불명확성이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결국 이 조항은 범죄구성요건을 단순히 ‘그 밖의 추행’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포괄적인 용어만을 사용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어떤 행위가 누구와 누구의 행위가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의 행위가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를 수범자가 예측할 수 없도록 할 뿐 아니라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법해석 가능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그러므로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형벌법규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 김기영,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과잉금지원칙 및 평등원칙에 관한 위헌의견

세 재판관은 “근무시간 중이나 공적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군인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로 인해 군기가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위와 같은 징계절차에 따른 제재를 통해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대한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군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이 조항이 개인의 법익을 전혀 침해하지 않는 합의에 의한 성적행위에 대해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이자 가혹한 강제력인 형벌로 규제하는 것은 형벌의 보충성 및 최후수단성에 반해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또한 군기라는 추상적인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어떠한 강제력도 수반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서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며 “따라서 이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평등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세 재판관은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종래의 평가를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현 시점에서 동성 군인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와 이성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규범적으로 달리 평가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따라서 이 조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한 동성 군인을 차별하고 있으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상명하복체계로서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군 조직의 특수성 군기 확립 및 전투력 보호라는 공익 등을 종합해 보면 과잉금지원칙과 평등원칙에도 위배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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