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횡단보도에 넘어진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승용차로 충격한 사망사고 운전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 20일 오후 10시 10분께 승용차를 운전해 대구의 시내 도로 편도 5차로 중 2차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 앞에서 정지했다.

A씨는 이후 녹색등에 출발했다. 그런데 때마침 보행자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넘어져 있던 80대 여성(B)을 발견하지 못하고 승용차 우측 앞바퀴로 피해자의 상체부위를 역과했다.

B씨는 다발성골절로 인한 저혈량쇼크로 사망했다. 검찰은 “A씨가 전방주시를 게을리한 과실로 사고가 났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당시 피해자가 무단횡단을 하고 넘어져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구지법(대구지방법원)
대구지법(대구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형사6단독 문채영 판사는 최근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문채영 판사는 “이 사건은 피해자가 보행신호 녹색등이 점멸 중일 때 횡단을 시작했고, 보행자 신호가 얼마 남지 않자 빨리 건너기 위해 달리다가 넘어졌다”며 “마침 차량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었고, A씨는 횡단보도에 넘어진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정차 중이던 차량을 그대로 출발시킨 것으로, 이 사안의 쟁점은 A씨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라고 전제했다.

문채영 판사는 “증거를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문채영 판사는 “도로교통공단의 운전자 시야범위 측정 및 사고재현 결과에 의하면 운전자의 일반적인 자세에서 안구 위치를 기준으로 전방을 바라봤을 때 차체구조물 등으로 인해 전방 상황 일부가 확인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하는데, 이 사건 차량 운전자의 전방 노면에 대한 시야범위는 차체 전면부에서 약 7m 떨어진 지점부터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즉, 이 차량 전면부에서 7m 범위 내는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는데, 피해자는 차량으로부터 약 6m 떨어져 있는 위치에 넘어져 있어 사각지대 내에 있었다”고 짚었다.

문채영 판사는 “이 사고 장소는 당시 시내 한가운데 도로로 주변의 밝기 정도로 인해 노면의 물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으나, 피해자가 넘어진 이후 피고인이 전방을 바라봤을 경우 차체구조물에 의해 넘어진 피해자를 인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문채영 판사는 “그렇다면 피해자가 넘어지기 전에 피고인이 뛰어오던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있는지에 관해 보건대,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이 전방을 바라봤을 때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단하고 있었고, 피고인 차량은 2차선의 횡단보도 정지선 즈음에서 정차하고 있었는데 왼쪽 1차선에는 택시가 정지선을 훌쩍 넘어 상당히 앞에 정차하고 있었으며, 피해자는 1차선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 앞쪽에서 발이 걸려 넘어지기 시작해 2차선에 정차하고 있던 피고인 차량 앞에 전도된 것인바, 피고인 운전석에서는 택시로 인해 시야가 가려 왼쪽에서 뛰어오는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문채영 판사는 “차량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자 서행하며 출발한 피고인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전방주시 주의의무를 기울이더라도 무단횡단한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엎드려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당시 휴대폰을 보거나 동승자와 대화하는 등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문채영 판사는 “피해자가 전도되자마자 차량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고 바로 피고인 차량이 출발하는 것이 확인되며, 이 모든 것이 불과 2~3초 사이에 벌어진 일인 점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있었다고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 차량은 정지선을 넘어 정차한 것이 아닌바, 이로 인해 피해자가 사각지대 안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문채영 판사는 “검사는 이 사건 차량 및 피고인 신체조건 등과 같은 상황 하에서는 자동차 전장 길이 만큼인 4m에서 5m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자료를 근거로 기소했으나, 도로교통공단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이 차량은 7m의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판단했다”며 “재현 당시 피고인이 시트 높이를 낮추어 검증하는 등 달리 분석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채영 판사는 “그렇다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검찰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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