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공무원이 퇴근하면서 생활용품점에 들러 물건을 사고 승용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다가 당한 교통사고에 대해 법원은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인사혁신처의 판단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2월 인사혁신처는 퇴근 중 교통사고를 당한 공무원 A씨에 대해 생활용품점에 들렀단 이유로 공무상재해 불승인 통보를 했는데, 서울행정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2021년 11월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 승용차를 이용해 집으로 가던 중 3일 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는 자녀에게 도시락을 챙겨주기 위해 보온 도시락을 구매하기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생활용품 마트에 들렀다.

물건을 산 A씨는 다시 승용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던 중 교차로에서 다른 차량에 의해 승용차 후미를 들이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 A씨는 “퇴근 중 발생한 사고로 공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했다.

인사혁신처는 “▲자택까지의 통상 소요시간(1시간)에 비춰 생활용품점 체류시간(27분)을 단순한 경유시간으로 볼 수 없는 점 ▲생활용품점의 위치가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나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공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무원재해보상심의위원회 판단 등에 근거해 불승인 결정했다.

A씨는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A씨는 “퇴근하던 중 자녀의 보온 도시락통을 구입하기 위해 27분 정도 생활용품점에 들른 것은 필요한 용품을 사기 위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생활용품점에 들른 것만으로는 퇴근의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을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결국 이 사고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퇴근하던 중 발생할 교통사고로써 공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사혁신처의 요양불승인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공무원재해보상법 제4조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를 공무상 재해로 규정한다. 공무상재해의 구체적인 인정기준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ㆍ퇴근하거나, 근무지에 부임 또는 귀임하는 중 발생할 교통사고ㆍ추락사고 도는 그 밖의 사고로 인한 부상”을 공무상 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사고 중에서 출퇴근 경로 일탈 또는 중단이 있는 경우에는 출퇴근 재해로 보지 아니하고, 다만, 일탈 또는 중단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출퇴근 재해로 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는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가정법원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가정법원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장우석 판사는 최근 퇴근하다 교통사고로 다친 공무원 A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한 공무상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장우석 판사는 “공무원의 출퇴근 행위가 공무수행의 전 단계로서 공무수행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공무상재해로 인정해 공무원을 보호해 주는 것이 공무원 및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무상 재해보상법의 입법 취지”라고 짚었다.

장우석 판사는 “산재보험법령의 규정 내용 등에 비춰 보면, 공무원의 출퇴근 경로에서 일탈 내지 중단 중의 사고 및 그 후의 이동 중의 사고에 대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어서 공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출퇴근 경로에서 일탈 내지 중단하게 된 원인이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행위를 하던 중의 사고 및 그 후의 이동 중의 사고에 대하여도 공무상 재해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장우석 판사는 “이 사고는 원고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한 이후에 발생한 사고로서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4조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따라서 불승인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장우석 판사는 “원고는 통상 근무지에서 집까지 39km 거리를 승용차를 이용해 출퇴근했는데, 원고가 퇴근하면서 27분간 들른 생활용품점은 집에서 약 2km 떨어진 근무지와 집까지 승용차로 이동하는 경로 중간에 위치해 있고, 사고지점도 집에서 1km 떨어진 곳으로, 생활용품점과 사고지점은 원고가 승용차를 이용해 통상적으로 퇴근하던 경로 범위 내에 있다”고 봤다.

또 “원고는 퇴근하면서 수능을 치르는 자녀의 보온도시락 구매를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깝고 집으로 가는 경로 중간에 위치한 생활용품점에 들른 것이고, 면적이 넓은 점포에서 물품을 찾지 못하다가 27분 정도 체류하게 됐다고 주장한다”며 “보온도시락을 구입하기 위한 행위는 동기, 목적, 시기 등에 비춰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는 행위로서 출퇴근 경로에서 통상 수반될 수 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라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장우석 판사는 “420평에 이르는 점포 규모, 물품을 선택함에 있어 소요되는 개인적 시간의 차이 등을 고려하면, 생활용품점에서 27분 정도 체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기 필요한 행위에 소요되는 시간을 현저히 초과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 판결은 인사혁신처가 항소하지 않아 지난 10월 5일 확정됐다.

이철수 국공노 위원장
이철수 국공노 위원장

국가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이철수)는 이번 승소 결과를 알리며 “공무원의 재해보상 관련 법령 및 지침 등 개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환영했다.

이철수 국공노 위원장은 “그동안 있었던 인사혁신처의 공무상요양 승인 판단 사례에 비춰 특별한 사안도 아닌데 소송까지 온 것이 다소 황당하다”며 “하지만 이를 계기로 소송을 함께한 조합원처럼 억울한 조합원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공무원재해보상 관련 법령과 근거 등이 미비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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