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이혼소송 중인 아내가 거주하는 주택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남편에 대해 검사가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했으나, 헌법재판소는 “남편이 공동거주자의 지위에 있다”며 “기소유예는 검사의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고 판단해 취소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 동기와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기소하지 않고 용서해 주는 것을 말한다.

헌법재판소(헌재) 심판정
헌법재판소(헌재) 심판정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9월 별거 중인 아내 B씨가 거주하는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주거침입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으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아내와 공동으로 거주하던 주택에 출입을 막을 정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아내의 동의 없이 주택에 들어갔다고 주거침입 행위로 볼 수 없고, 사실상 평온을 해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거침입 피의사실이 인정됨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함으로써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2021년 12월 기소유예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A씨가 이혼소송 중인 아내가 거주하는 주택의 공동거주자 지위에 있는지 여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청구인 A씨가 수원지검 안산지청 검사를 상대로 주거침입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인용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헌재는 “청구인은 피해자와 10년 넘는 혼인생활을 유지해 왔고, 주택 매매대금의 상당 부분을 마련했으며, 다른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휴일에는 이 주택에서 생활했다. 청구인은 이혼소송 중 휴가기간에도 주택에 머물렀다. 청구인이 주택에 들어오지 말 것을 요청받은 때는 이 사건이 있기 불과 2주 전이고, 당시 피해자는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자가격리를 이유로 들었다. 이 주택에는 여전히 청구인의 짐이 보관돼 있었다”며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사건 당시 청구인이 주택의 공동거주자 지위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 사건이 있기 전 피해자가 청구인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거나, 청구인을 주택에 일방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청구인과 피해자 사이에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청구인이 주택에 더 이상 살지 않기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 밖에 청구인이 주택의 공동거주자 지위에서 이탈했다거나 배제됐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며 “따라서 청구인이 임의로 주택에 들어간 행위는 주거침입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기소유예처분의 바탕이 된 주거침입 피의사실은 청구인이 주택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는 것인데, 비밀번호는 청구인이 주택의 공동거주자로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일 뿐, 불법적이거나 은밀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 아니다. 또한, 청구인은 피해자가 이전에 자가 격리를 이유로 출입을 막았기 때문에 2주간의 격리 기간이 종료되었을 무렵 주택에 들어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구인은 주택에 들어가 머무르다가 피해자가 퇴근 후 경찰을 대동하고 오자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주택 출입 전후 객관적ㆍ외형적으로 드러난 청구인의 행위태양을 두고 사실상의 평온을 해치는 것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한편,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이번 결정에 대해 “오랫동안 공동생활을 해온 부부관계에서의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방이 이혼을 청구하고 상대방의 공동주거 출입을 금지한다고 곧바로 상대방이 공동거주자 지위에서 이탈한다거나 배제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공동거주자 사이 관계, 공동주거의 이용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 결정은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침입’에 해당하는지는 출입 당시 객관적ㆍ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적용해, 수사된 사실관계만으로는 청구인이 주택에 들어간 행위를 주거침입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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