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북한 접경지역에서 풍선 등으로 대북 전단지를 북한에 보내는 것을 규제하는 이른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국회는 2020년 12월 ‘전단 등 살포’ 즉 ‘선전 증여 등을 목적으로 전단, 물품,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승인받지 아니하고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통해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그 미수범도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고, 2021년 3월 30일부터 시행됐다.

청구인들은 개정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제1항 등이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20년 1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26일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북한으로 전단 등을 살포해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1항 3호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 위헌의견

4명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의 궁극적인 의도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북한 정권이 용인하지 않는 일정한 내용의 표현을 금지하는데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표현의 내용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국가가 이러한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허용되고 특히 정치적 표현의 내용 중에서도 특정한 견해 이념 관점에 기초한 제한은 과잉금지원칙 준수 여부를 심사할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며 심판대상조항은 입법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과 같이 전단 등 살포를 금지ㆍ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나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기해 행위자에게 경고하고 위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상황에 따른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짚었다.

또한 “전단 등 살포 전에 살포 시간, 장소, 방법 등을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고, 관할 경찰서장은 관련 법률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경우 ‘살포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입법적 보완을 하면 경찰이 이에 대응하기 용이해지므로 심판대상조항을 통한 제한보다 덜 침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더욱이 심판대상조항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이는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으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 확보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될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반면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재판관들은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발생할 수 있는 위해나 심각한 위험은 전적으로 제3자인 국민의 생명 북한의 도발로 초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법원이 구체적 사건에서 인과관계와 고의의 존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위해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북한에 대해 행위자의 지배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비난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책임주의원칙에도 위배돼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 유남석,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 위헌의견

3명의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보장과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 달성을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적합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이 추구하는 주된 목적인 국민, 특히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형벌권을 행사하지 않고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대응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형벌의 보충성 및 최후수단성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내부의 정보 유통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므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짚었다.

재판관들은 “행위자로서는 표현행위가 심판대상조항의 구성요건 중 ‘전단 등 살포’에 해당되는 것이 확실한 이상 표현행위로 수사 재판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위협 기제가 되므로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보장은 중대한 공익에 해당하고, 국가는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할 책무가 있으나 표현행위자가 받게 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그 표현의 의미와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매우 크다”며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 반대의견(합헌)

2명의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전단 등 살포’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을 하는 것을 금지할 뿐, 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고 있지 않는바, 이는 ‘전단 등 살포’라는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국가형벌권 행사가 최후수단으로서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법익의 침해위험을 동등한 정도로 방지하면서도 덜 침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봤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이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는 이상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 등 살포’ 외의 다른 방법, 예컨대 내외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충분히 표명될 수 있고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시도하는 국면에서 제한된 표현의 자유도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국면에서 확장될 수 있다는 동적인 관점에서 심판대상조항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처벌은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하므로 ‘전단 등 살포’를 극도로 경계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전단 등 살포’의 억제를 위해서라도 남북합의서를 준수할 이익이 있고, 북한이 이를 준수하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바 이러한 공익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 결정의 의의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심판대상조항이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보면서도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번 결정은 표현의 내용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는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선례의 입장에 기초한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점과 그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따라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제한은 철폐됐다”며 “다만 위헌의견에서 제시된 대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단 등 살포 현장에서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접경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입법자는 향후 전단 등 살포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고찰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경찰 등의 대응 조치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계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입법적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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