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말기 암환자가 개인택시를 타고 가던 중 택시기사의 실수로 교통사고가 발생, 이로 인해 제때 항암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면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18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1심 법원은 원고인 유족의 청구(2600여만원)를 전부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피고측인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택시연합회)가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재판부의 강제조정으로 원고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양당사자 모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전주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10월 방광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2차례 항암 수술을 받았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 A씨는 자신의 연고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이어가고자 전주시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그해 12월 27일 A씨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택시로 귀가하던 중 택시기사의 부주의로 도로 연석을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A씨는 전치 12주의 흉추골절상을 입어 예약된 대학병원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고, 결국 사고 50여일만인 2021년 2월 초에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부인이자 상속인은 사고를 낸 택시기사가 보험 가입한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배상을 요구했으나, 택시연합회에서 배상액으로 제시한 금액은 400만원에 불과했다.

A씨의 부인은 400만원이 피해배상 금액으로는 터무니없이 적다고 판단,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률구조공단은 A씨의 사인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은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항암치료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며 위자료 등 26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인 택시연합회는 “A씨가 교통사고가 아닌 방광암 때문에 사망한 것”이며, “경미한 충돌사고에 불과한 사고로 흉추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고로 인해 A씨는 흉추 2곳이 고절돼 12주의 치료를 요하는 중대한 상해를 입었으며, 노동능력상실률 32%의 영구장해까지 가지게 됐다”며 “나아가 결국 적시에 항암치료를 진행하지도 못했고, 사고로 인해 신체상태가 악화돼 결국 사고 이후 2개월도 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A씨는 두 차례의 수술을 진행하며 항암치료까지 진행해 가족과 여생을 보내고자 했으나, 이 사고로 인해 심각한 절망감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바, 피고는 A씨에게 15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1심 재판부는 “원고는 A씨를 간병하며 치료를 위해 전주로 내려왔다가 이런 사고로 인해 갑자기 A씨를 보내야 했고, 치료를 받기 위해 전주로 내려오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고통스러워하는 A씨를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평생 후회와 절망감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점에 비춰 피고는 원고에게 7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여기에 교통사고 치료를 받으며 총 36일 입원한 것을 고려한 휴업손해 367만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므로 총 263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택시연합회에서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재판부 강제조정으로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1750만원으로 확정됐다.

원고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법률구조공단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교통사고가 사망의 직접 원인은 아닐지라도 이로 인해 암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됐다면, 위자료 산정 시 이런 사정이 적극 반영돼야 함을 시사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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