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의료법인 내세워 주도적으로 병원 세운 비의료인, "악용ㆍ탈법"의 경우에만 처벌 가능(대법원 2023. 7. 17. 선고 2017도1807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피고인은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비의료인)에 해당하여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음에도 2009년 2월경 형식적으로 이 사건 의료법인의 설립허가를 받은 다음, 그 법인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이 사건 의료기관의 개설신고를 하고 의사 등을 직접 고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수의 환자들을 상대로 진료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인 것처럼 가장한 채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위반하여 이 사건 의료기관을 개설ㆍ운영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의료법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심 법원은 유죄로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이 항소한 원심은 그대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파기한 다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원심은, 의료인 개인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에 의하여 개설ㆍ운영된 것인지에 관한 대법원 2011년 10월 27일 선고 2009도2629 판결 등 법리(기존 주도성 법리)에 기초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받을 때 일부 재산출연을 가장하였고, 피고인이 이사장 지위에서 과다한 급여를 지급 받고, 자신의 배우자 등 임직원들에게도 과다한 급여를 지급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이 사건 의료법인을 운영하였으므로 이 사건 의료법인의 이사나 감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해설)

우리 의료법에서는 의사가 아니면 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인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즉, 의료법 제33조에서는 ①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②국가나 지방자치단체, ③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의료법인을 말함), ④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⑤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으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의료원, 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제2항)고 규정한다. 법인이 아닌 개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후,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형태를 ‘사무장병원’이라 통칭한다.

사무장병원의 경우에는 형시적으로 의료인 이름으로 개설될 뿐 실질적으로 의료인이 아닌 자람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판명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에 의해서 설치되는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형식상으로만 법인의 이름을 빌릴뿐 실질적으로는 사무장병원과 다름 없이 운영됨으로써 의료기관의 개설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의료기관과 허용되는 의료기관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의료법 제33조 2항에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고 있는 취지는,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의료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엄격히 제한해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대법원 2005. 2. 25. 선고 2004도7245 판결 등). 비의료인이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갖추고 의료인을 고용해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한 것은 형식만 적법한 의료기관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실질이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 행위인지 여부’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자기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는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에 대한 투자 대가로 수익을 분배 받았는지, 비의료인과 의료법인 사이에 재산 등이 혼용됐는지 등 서류의 외형을 넘어 내부의 실질적 운영 실체까지 검토해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법이 이사회의 임원진의 구성과 활동을 단순히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반면, 비의료인이 병원 업무 전반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의사결정과 집행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고, 재정 및 회계처리도 개인재산과 혼재돼 있는 경우에는 사무장 병원으로 봐왔다.

그동안 우리 판례는 ‘주도성의 법리’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즉, 의료법에서 금지되는 의료기관 개설행위는, 비의료인 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 의 충원 ㆍ관리, 개설신고 ,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료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 을 갖추고 유자격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 를 한 행위는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의 개설로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의료인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하고, 개설신고 가 의료인 명의로 되었다거나 개설신고 명의인인 의료인이 직접 의료행위를 하였다 하여 달리 볼 수 없다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도2629 판결 )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의료법상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ㆍ운영 등에 필요한 자금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의료법인에 출연하는 것이 허용되고, 의료법인의 이사 등 지위에서 의료기관의 개설ㆍ운영에 관한 의사결정 내지 업무집행에 참여하거나 주도하는 것도 허용되므로, 기존 대법원 판결에 의한 주도성 법리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자격 위반 판단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비의료인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국 위 사례에 대하여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주도성 법리에 따라서 비의료기관 개설행위의 판단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구체적인 새로운 기준을 내세울 것인지가 문제된다. 참고로 1심과 원심은 기존의 주도성 법리를 적용해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위 사례에 대하여 대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이 사건 의료기관 개설ㆍ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하였음은 인정하면서도 ① 피고인이 실체를 갖추지 못한 의료법인을 악용하였다거나 ②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하여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하였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심리ㆍ판단이 필요하다고 본 다음, 피고인이 보통재산 일부의 출연을 가장하였으나, 기본재산은 정상적으로 출연되었고, 출연이 가장된 부분은 전체 출연가액의 10% 정도에 불과한데, 피고인의 보통재산 출연 가장으로 이 사건 의료법인이 정상적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었는지, 피고인이 사후적으로라도 이 사건 의료법인에 보통재산을 출연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추가로 심리ㆍ판단할 필요가 있고, 피고인과 피고인의 배우자 등이 일시적으로 고액의 급여를 지급받았던 것으로 보이나, 피고인 등이 상당기간 동안 다른 직원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급여를 수령하던 중 이 사건 의료법인의 규모와 수익의 증대 및 근무경력 등이 고려되어 급여가 인상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와 같은 경우라면 피고인이 이 사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하였다고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피고인 등의 급여가 인상된 시기, 급여가 인상된 경위, 급여 인상액이 이 사건 의료법인의 규모나 수익 등에 비추어 합리적인 범위를 지나치게 추가하는지, 이사회 결의 등 정당한 절차나 적정한 회계처리가 이루어졌는지 등을 추가로 심리ㆍ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원심은 일부 단편적인 사정만을 근거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에 따른 의료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대법원 2023. 7. 17. 선고 2017도1807 전원합의체 판결).

위와 같은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의료법인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이 개설ㆍ운영하였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 명의 의료기관이나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에 관한 선례와 마찬가지로 해석, 적용되어야 하고, 의료법 제33조 제2 항 위반죄에 관한 구성요건해당성과 고의의 핵심적인 징표는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ㆍ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여 의료법인의 공공성 및 비영리성이 형해화되고 비의료인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데에 있으며,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한 실질적 목적과 동기, 설립과정의 적정성, 의료법인 내부의 의사결정방식, 의료업 운영 행태, 자산관리 및 수익의 귀속 양상 등 의료법인의 설립과 운영의 전반에 나타난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의료인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로 의료법인의 공공성 및 비영리성이 형해화되어 의료법인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부여하는 의료법의 입법취지가 몰각되었다고 볼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중심으로 이를 판단하여야 하므로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행위는 의료기관 개설과 운영이라는 전과정을 통하여 행위자의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다수의견은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구성요건해당성 및 고의의 판단을 위한 여러 간접사실을 의료법인 설립에 관한 사항과 의료법인 운영에 관한 사항으로 형식적, 도식적으로 나누어 제시한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음. 이러한 기준으로는 피고인의 행위와 고의를 전체적, 통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그 결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자격 위반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함. 이에 따르면 영리 목적 의료기관의 개설을 억지하여 의료의 적정을 기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고자 하는 의료법의 입법목적을 해치고 나아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의견이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설립과정에서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되고, 의료법인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의 주도성 법리에 의해 처벌 여부를 결정할 경우에는 위와 같은 경우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하는 것이어서 처벌이 불가피하다. 결국 의료법인에 비의료인의 자본투자를 허용하는 것과 기존의 주도성의 법리는 상호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도성의 법리 만에 의할 경우에는 의료법인에 자본을 투자하고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하는 비의료인의 경우 모두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어서 처벌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

특히 민법에 의해서 설립된 비영리법인의 경우 누군가가 설립주체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자본투자 또한 필수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경우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주도적으로 설립하고 운영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게 되면 민법상 비영리법인에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는 것과 모순이 발생한다.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사항을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해석해 처벌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존의 주도성의 법리는 처벌의 범위를 판결을 통해서 확대하는 것이므로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의료법의 규정을 몰각할 우려가 있다. 또한 비의료인의 의교기관 설립행위가 어떠한 경우에 처벌되고, 어떠한 경우에 처벌되지 않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을 침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주도성의 법리 하나만으로 의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의 처벌기준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가 형식논리에 의해서 비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운영과정에서 주요 의사를 결정해왔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오히려 처벌의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였다. 주도적 설립이라는 기준도 상황에 따라서 그 허용여부를 달리 보았다. 따라서 그동안의 주도성의 법리보다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보다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방향이고, 의료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비의료인의 자본투자와 의사결정을 허용하는 것과 조화로운 해석이어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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