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식물인간 남편 대신 처벌불원서 제출, 반의사불벌죄 처벌불원의사 효력 없어(대법원 2023년 7월 17일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피고인은 2018년 11월 19일 자전거를 운행하던 중 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하여 진행한 과실로 전방에서 보행 중이던 피해자를 들이받아 넘어지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뇌손상 등의 중상해를 입게 하였다. 피해자는 위 사고로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고, 피해자의 배우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었다. 성년후견인은 피고인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제1심 판결 선고 전에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법원에 제출하였다.

1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면서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은 이 사건 범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데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제1심 판결 선고 전에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하였으므로 공소가 기각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형사소송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소송행위의 법정대리는 허용되지 않고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그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이다.

​(해설)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죄로 폭행죄와 근로기준법 제109조 제2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더라도 수사를 하고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나,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가 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이미 공소를 제기하였더라도 처벌불원의 의사가 표시된 후에는 공소기각판결을 선고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27조 제4항). 해제조건부 범죄라고도 하는데 위 폭행죄 이외에도 존속폭행죄, 협박죄, 존속협박죄, 명예훼손죄, 출판물 등에 관한 명예훼손죄, 과실상해죄 등도 반의사불벌죄이다. 친고죄와는 피해자의 의사 표시 없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자인 경우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하여 반의사불벌죄에 관하여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된다. 의사무능력자의 경우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처벌의 의사를 철회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인은 질병,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인물을 대신해 법정대리인 역할 등을 하는 사람이나 법인을 뜻한다.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년자에게 법률 지원을 돕는 제도로, 민법에서는 그동안의 금치산ㆍ한정치산 제도를 폐지하고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법원은 본인 혹은 친족, 검사 등의 청구에 따라 법원은 의사의 감정을 통해 성년후견 당사자의 정신상태를 확인하고 당사자에게 진술을 받는 절차를 거쳐 후견인을 선임하게 된다. 선정된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법률행위의 대리권ㆍ동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피후견인 스스로 결정이 어려운 경우 의료, 재활, 교육 등의 신상에 관련된 부분에서도 법원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으로 결정을 할 수 있다.

성년후견제도에는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이 있으며 법정후견은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나눠진다. 성년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는 경우로 대부분의 조력을, 한정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로 일부분에 대해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특정후견은 일시적 후원이나 특정사무에 대한 후원이 필요한 경우에 인정된다. 임의후견은 장래 정신기능 약화에 대비해 스스로 후견인을 정하는 것이다.

​위 사례와 같은 경우 피해자가 처벌의사를 표시하거나, 이미 표시한 처벌의사를 철회하기 전에 의사무능력상태에 빠진 경우 성년후견인이 그러한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을까? 우리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음.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결하였다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 그 이유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므로 문언상 그 처벌 여부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달려있음이 명백하고, 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나 형법, 형사소송법에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에 관하여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처벌의 예외를 명시적 근거 없이 확대하게 되면 형사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국가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며,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이미 개시된 국가의 형사사법절차가 중단된다는 면에서 처벌불원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하므로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경우 성년후견인의 대리에 의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그것이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에서 친고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에 대하여 처벌불원의사의 대리에 관한 근거규정이나 준용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대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성년후견제도가 피후견인의 보호나 복리를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므로 가정법원에 의한 성년후견인의 선임은 형사소송절차에 대한 별도의 고려 없이 가사재판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의사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사무능력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신상 등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행복추구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제3자로 하여금 그 결정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사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의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할 필요가 있고, 형사소송법에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위하여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지만 이를 금지하는 규정 역시 존재하지 않음. 현행 형사소송법의 해석상 제3자에 의한 처벌불원의사의 지원ㆍ보완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며, 형사소송법은 제26조에서 일정한 경우에 의사무능력인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소송행위 대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일 경우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법률의 흠결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법률의 흠결을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불허하려는 입법자의 의도라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형사소송법 제26조를 법률 흠결상태에 있는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인 경우에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므로 이러한 유추해석은 처벌조각사유를 확대하는 것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고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 않으며, 성년후견인은 가정법원에 의하여 선임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특성을 갖고, 소송행위 대리에 관한 가정법원의 허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체적 심리절차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것이 성년후견제도를 새롭게 도입하여 의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을 지원ㆍ보완하려는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므로 피해자가 의사능력을 결여한 경우, 형사소송법 제26조의 유추적용과 성년후견제도의 활용을 통해 가정법원이 선임한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반의사불벌죄에 관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있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차이는 성년후견인에게 피해자인 피후견인을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 또는 처벌의사의 철회를 할 권한이 명시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다수의견은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는 형식논리적인 해석이고, 반대의견은 성년후견제도의 취지나 형사절차의 다른 제도와 비교해봤을 때 처벌불원이나 처벌의사의 철회가 가능하다는 합목적적인 해석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은 형벌권을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성년후견인에게 처벌불원 등의 의사를 표시할 명시적인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이를 부인한 논거는 되지 못한다.

​성년후견제도는 일차적으로 피후견인의 보호, 복지를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피후견인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피후견인의 보호를 위해서 일정한 경우 후견인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서 성년후견제도는 피후견인에게 발생한 여러가지 법률적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불갈피한 수단이기도 하다. 상속의 문제, 재산관리의 문제 등 어떤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데도 의사무능력자여서 이를 결정하지 못한 경우 피후견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다. 따라서 오로지 피후견인의 보호와 복리만을 위한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형사절차의 진행에 있어서도 가해자는 합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합의에 따라서 형벌권의 존부나 양형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 피해자인 피후견인은 의사능력이 없기 때문에 합의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성년후견제도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합의가 불가능해 가해자에게 합의의 기회마저도 박탈당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사정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합의를 통해서 처벌불원의 의사를 대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이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법정대리인이 대신해서 합의를 하거나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한다. 당연히 그 경우에 효력이 있다. 성년후견과 마찬가지로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도 형사상 처벌불원의사나 합의의 의사를 대리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상으로는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를 대리해서 합의를 하고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법정대리인은 미성년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그대로 효력이 인정된다. 다수의견은 형사사법의 목적ㆍ보호적 기능 등을 고려해 범죄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를 규정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고 합의를 통해서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금지했어야 한다. 국가형벌권의 목적이 무조건적인 처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면 범죄에 대한 상응한 처벌을 근거로 성년후견인의 처벌불원 등의 의사를 허용하지 않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피해자인 피후견인의 의사가 정확하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가해자의 처벌불원을 의도한 것이라고 단정짓지 못한다는 점 또한 단순한 추론에 불과하다. 피후견인의 의사는 후견인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며, 혹시라도 피후견인에게 피해가 될 것을 염려해 일정한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견인의 의사결정은 피후견인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더라도 비교적 피후견인의 의사에 접근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의사능력이 없는 피해자의 경우에도 의사능력이 있는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처벌불원 등의 의사를 확인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반대의견에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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