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삼성전자에서 20년 넘게 DRAM(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책임연구원ㆍ수석연구원ㆍPL(Project Leader) 등 핵심 인력으로 근무하다 전직금지약정서를 내고 퇴사한 후 경쟁업체에 입사한 연구원에 대해 삼성전자가 제기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삼성전자
삼성전자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9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A씨는 DRA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해 오면서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승진했으면, 2018년 6월부터는 총괄 직책인 PL(Project Leader)로 근무해 왔다.

그러다 2022년 2월 A씨는 삼성전자에 퇴직 의사를 밝혔고, 그해 4월 ‘퇴사 후 2년간 삼성전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를 창업하거나 경쟁업체에 취업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영업비밀 등 보호 서약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서약서는 ‘전직금지약정’이다.

그런데 A씨는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3개월이 지나,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일본 지사에 입사했고, 2023년 4월부터는 미국 본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DRAM 산업분야에서, 2022년도 1분기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 점유율 42.7%로 1위를 기록했고, 마이크론은 3위에 해당하는 24.8%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두 회사는 DRAM 산업분야의 주요 경쟁 상대다.

이에 삼성전자는 “A씨는 전직금지약정에 따라 퇴직일로부터 2년간 경쟁업체로 전직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데, A씨는 전직금지기간 내 경쟁업체로 전직해 근무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보유한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전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반면 A씨는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영업비밀 내지 보호가치 있는 이익은 내용이 불분명하고, 전직금지약정에 따른 대가를 받지 못했으며, 전직금지기간 2년도 과다한 점에 비춰 볼 때, 전직금지약정은 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 해당해 민법 제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0민사부(재판장 임해지 부장판사)는 지난 5월 24일 삼성전자가 퇴사 후 3개월 만에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전직금지약정이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가 삼성전자의 경쟁업체에서 근무하거나, 자문계약이나 고문계약, 용역계약 등으로 경쟁업체가 수행하는 DRAM의 연구 내지 개발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했다. 또한 A씨가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삼성전자에게 위반행위 1일당 5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간접강제도 명했다.

재판부는 먼저 삼성전자에게 전직금지약정을 통해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삼성전자에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DRAM 설계 업무를 담당하면서 삼성전자의 DRAM 개발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축적해 온 기술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며 “A씨 스스로 작성한 영업비밀등보호서약서의 기술정보들이 경쟁업체에 유출될 경우 삼성전자에게 손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A씨는 DRAM 설계 업무뿐만 아니라 선임연구원, 수석연구원을 거쳐 PL(총괄 직책)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DRAM 장기 개발계획(로드맵)의 운영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보들은 삼성전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로서 구축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상당한 노력과 투자, 시행착오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정보들이 유출될 경우 경쟁업체는 삼성전자보다 적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도 DRAM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돼 삼성전자에 손해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DRAM과 같은 반도체 분야는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업체의 범위가 어느 정도 한정되는 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 사이에는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에 있어 상당한 격차가 있는데, 그러한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기술의 유출 방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A씨가 지득한 삼성전자의 DRAM 설계 기술과 장기 개발계획 관련 정보들은 유출될 경우 삼성전자의 유형ㆍ무형적 손실과 그로 인해 경쟁업체들이 얻는 이익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점, 손해배상 등 사후적인 구제 수단만으로는 삼성전자의 손해가 충분히 전보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전직금지약정의 전직금지대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거나 전직금지기간이 과도하게 장기간이라고 볼 수 없고, 삼성전자의 기술 및 경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라고 판단했다.

◆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대가 제공 여부

재판부는 “A씨가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로 제공받은 것은 없으나, 금전보상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전직금지약정이 무효라고 볼 수 없다”며 “삼성전자는 퇴직을 희망한 A씨에게 1억원의 특별인센티브를 제안하는 한편, 해외근무기회 제공, 사내 대학원 부교수직 보임, 1~2년분 연봉에 해당하는 전직금지 약정금 지급 등을 제안했으나, A씨가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성과급과 달리 전직금지의 대가로 볼 여지가 있는 특별인센티브를 지급받았고, 20년 넘게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DRAM 설계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며 꾸준한 승진 내지 승급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2019년 4월부터 1년 동안 미국 대학교에서 산학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받았다”고 덧붙였다.

◆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하더라도 공공의 이익

재판부는 “삼성전자는 산업기술보호법의 국가핵심기술을 보유ㆍ관리하고 있는 대상기관에 속하는 점, 반도체 분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록 전직금지약정이 A씨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유효라고 볼 만한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 간접강제 하루 500만원

재판부는 “명령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간접강제를 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고, A씨가 가처분 결정을 위반할 가능성, A씨의 의무위반 행위로 인해 삼성전자가 입게 될 재산상 손해의 정도 등을 고려해 간접강제금을 위반행위 1일당 500만원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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