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23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 소송에서 1300억원의 배상 결정 결과를 전하며, “정부는 국민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2018년에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엘리엇 사건의 중재판정이 6월 20일 선고됐다.
2018년 7월 12일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의 주주로서,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이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에 찬성하도록 해, 삼성물산 주식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중재를 신청했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의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1 : 0.35’는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합리하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국제투자분쟁 중재판정부는 한-미 FTA(협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우리 정부 측에 미화 5358만 6931달러(한화 약 690억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법무부는 “엘리엇 측 최초 청구금액 7.7억 달러(한화 약 9917억원) 중 배상원금 기준으로 약 7%가 인용됐다”고 밝혔다. 환율은 2023년 6월 20일 기준 1달러당 1,288원.
법무부는 지난 20일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선고 관련 첫 소식을 전할 때는 “엘리엇 청구금액 7.7억달러(약 9,917억원) 중 배상원금 기준 약 7% 인용, 정부 약 93% 승소”라고 밝혔는데, 승소 표현에 비판이 커지자 23일 보도자료에는 ‘93% 승소’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ISDS 중재판정부는 엘리엇 측에 690억원 배상 외에도 법률비용 372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배상원금에 2015년 7월 16일부터 판정일까지 5% 연복리 이자 지급을 명함에 따라 한국은 엘리엇에 총 1300억원 대의 배상을 지급해야 한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의 주요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고 전했다.
중재판정부는 ▲복지부 관계자 등이 국민연금의 합병표결에 개입한 행위는 협정상 국가 책임의 근거가 되는 ‘조치’에 해당하고, ▲국민연금은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므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행위는 우리 정부에 귀속된다고 봤다.
국민연금은 한국법상 공식적으로 또는 법률상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국가에 귀속되는 ‘국민연금기금’을 관리 및 운용하면서 한국 정부와 기능적 및 재정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 이 사건에서 보건복지부의 지침과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판단했다.
특히 중재판정부는 본건 합병 관련 국내 형사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협정상 최소기준대우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한-미 FTA는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한 국제관습법상 외국인에게 인정되는 대우를 최소기준대우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중재판정부는 국내 형사 확정판결을 인용 ▲국민연금이 사실상 본건 합병에 관해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어 국민연금의 표결과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국민연금의 행위가 우리 정부에 귀속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손해액 산정에 대해 중재판정부는 ▲본건 합병이 부결되었더라면 실현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물산 주식의 가치(엘리엇이 주장하는 삼성물산 주식의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는 엘리엇 측 주장을 기각하고, ▲삼성물산 주식의 실제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인정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법률비용의 분담에 대해 중재판정부는 엘리엇 측 법률비용의 일부 2890만 3188달러(약 372억 5000만원)]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또 우리 정부 법률비용의 일부 345만 7479달러(약 44억 5000만원)를 엘리엇 측이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법무부는 “본 사건은 2018년 7월 중재신청서가 접수되고, 2022년 5월 사실상 모든 절차가 종료된 사안으로서, 그동안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순수한 상업적 행위에 불과하므로 이를 곧 국가의 ‘조치’로 인정하기 어렵고, ▲문OO 등의 행위와는 별개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중장기적 수익성을 고려해 독립적으로 심의ㆍ표결했으며, ▲약 11%의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의결권만으로 이 사건 합병이 의결되었다거나, 그로 인해 엘리엇 측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 주가가 아닌 주식의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강력히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정부는 국민의 세금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대리로펌 및 전문가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전했다.
국제투자분쟁 중재 당사자는 관할 흠결, 절차의 심각한 일탈,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본 사건의 법정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선고일로부터 28일 이내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무부는 또한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법령과 중재판정부의 절차명령에 따라 판정문 등 본 사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 사건의 판정문은 양 당사자가 보호 정보로 지정한 비밀정보의 비공개처리를 거쳐 PCA 홈페이지(www.pca-cpa.org)에 공개될 예정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