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22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삼성그룹 총수일가’로 대표되는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전횡과 후진적 거버넌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이재용 회장은 1년 6개월 실형으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이 엘리엇에 약 13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온 것과 관련해 경제개혁연대는 “법무부는 실제로 책임을 져야 마땅할 이재용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책임 추긍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경제개혁연대

이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ISDS 판정 논평’을 낸 경제개혁연대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일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이하 ISDS)에서, 엘리엇이 청구한 약 7.7억 달러 중 약 7%인 5,358만 달러(한화 약 690억원)를 우리나라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며 “인정된 배상액은 약 7%이지만, 지연이자와 법률비용(372억원)을 모두 합치면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1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아직 판정문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번 판정의 타당성이나 우리 정부 대응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적어도 이번 판정을 통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과 합병비율 등의 부당성이 다시금 확인됐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삼성그룹 총수일가’로 대표되는 국내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전횡과 후진적 거버넌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이는 국내 자본시장이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원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그룹 지배권 승계 및 강화를 위해 정부 최고수반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실체조차 알지 못했던 측근 실세에게까지 뇌물이 제공됐다”며 “뇌물 제공에 쓰인 자금은 언제나처럼 회삿돈이었다”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는 “나아가 국민연금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직권을 남용해 기금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며 “‘국민 노후자금이 이재용 회장의 지배권 승계 및 강화에 쓰였다’는 것은 조금의 과장도 없는 정확한 평가”라고 지목했다.

이어 “재벌 대기업집단 총수일가를 위해 국민 노후자금까지 동원되는 국가의 자본시장이 기업가치나 잠재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될 리 없다”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뇌물공여ㆍ횡령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1년 6개월 가량 실형 집행 후 가석방됐고, 작년 8월 복권됐다”며 “정경유착 범죄로 민주주의를 위협했고, 국민 노후자금에 심각한 손해를 입혔음을 고려하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었다”고 상기시켰다.

경제개혁연대는 “결국, 이재용 회장은 1년 6개월 실형으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반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이 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이재용 회장이 어떤 경영철학이나 미래비전을 보여주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법원 방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법원 방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경제개혁연대는 “더구나 삼성생명의 과도한 삼성전자 지분 소유 등 고질적인 소유지배구조 문제도 여전하다”며 “자조 섞인 표현인 ‘삼성공화국’은 보다 정확히는 ‘총수일가 공화국’이라고 해야 하고, 안타깝지만 여전히 부정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금이라도 위와 같은 오명을 해소하고,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먼저, 법무부는 신속히 이번 판정문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의 실체가 최대한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데, 이번 판정에 대한 취소 신청의 필요성이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라도 판정문 공개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취소 신청 여부와 별개로, 법무부는 실제로 책임을 져야 마땅할 이재용 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안종범 전 경제수석비서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등 주요 관계 당사자에 대한 책임 추궁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ISDS 판정으로 인한 우리 정부의 배상책임이 확정된다면, 이는 위 관계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로 평가할 수 있다”며 “뇌물과 외압 행사로 인한 손해를 모두 재정으로 부담한다면,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는 그만큼 또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편, 법무부는 엘리엇 청구 대부분을 방어했다는 등, 혹여라도 판정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취지의 언급을 해선 안 될 것”이라며 “이는 국가재정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 상황을 다뤄야 할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로 볼 수 없고,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이재용 회장에 대한 공소제기를 유지하고 있는 검찰 역시 판정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은 이번 판정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손해보전을 적극 시도해야 한다. 손해보전을 시도할 법률상 근거(국가재정법 제84조, 공공기관운영법 제35조)는 이미 명확하다”며 “당시 삼성물산 지분 약 11.2%를 소유했던 국민연금은 엘리엇(7.12% 소유)보다도 더 큰 손해를 입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계속 손해보전을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가입자인 국민에 대한 중대한 배임행위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며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자를 기만한 것이 아니라면, 즉각 손해보전을 시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