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심야에 도로에서 옷을 벗고 알몸으로 돌아다니다 여성의 어깨를 톡톡 쳐 자신을 보게 한 남성이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정식재판을 청구해 1심과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선고유예 선처 판결을 받았다.

범정(犯情)이 경미한 범인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刑)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다.

수원지방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경비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A씨(30대)는 2021년 9월 수원지방법원에서 공연음란과 강제추행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받았다.

A씨 2021년 5월 새벽 1시 20분경 용인시의 한 도로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알몸으로 돌아다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하고, 당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걸어가던 B(여)씨를 보고 20m 뒤쫓아가며 ‘저기요’라고 부르며 B씨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쳐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이 사건으로 벌금 10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 아동ㆍ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 및 아동 관련 기관에 3년간 취업제한을 명했다.

A씨는 벌금도 컸지만, 취업제한 명령은 큰 부담이었다. 이에 A씨는 형사전문 채다은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를 선임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수원지방법원, 수원고등법원, 수원회생법원 청사
수원지방법원, 수원고등법원, 수원회생법원 청사

1심인 수원지방법원 형사9단독 박민 판사는 2022년 1월 공연음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개전의 정상이 현저하다고 판단되므로, 이번에 한해 특별히 (벌금 1000만원)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결했다.

박민 판사는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점,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가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점, 피고인이 다른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을 통해 재범방지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흔적이 엿보이는 점 등 양형조건을 종합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박민 판사는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하므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및 취업제한 명령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의 변호인 채다은 변호사는 A씨에게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 등을 권유하는 등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게 권유했다. 선고유예 판결에 대해 A씨는 법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검사는 “1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에게 발령된 약식명령 벌금 1000만원과 달리 선고유예형을 선고했는데, 피고인이 공연음란 범행을 계획적으로 준비한 점, 약식명령 발령 이후 사정변경이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양형부당의 위법이 있다”며 “피고인에 대해 약식명령과 동일한 벌금 1000만원 형을 선고해 달라”고 항소했다.

이에 채다은 변호사도 항소심에서 항소하지 않은 자에게 불리하지 않을까 우려해 항소하며, A씨의 선처를 호소했다.

채다은 변호사는 “피고인은 야간 보안업무로 피곤해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중 밖으로 나가 옷을 벗고 다녀보자는 생각에 잘못을 저지르게 됐고, 이로 인해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며 자신이 얼마나 그릇된 생각을 했고, 큰 잘못을 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하게 됐다”고 밝혔다.

공연음란에 대해 채다은 변호사는 “피고인이 옷을 벗고 다는 현장은 사람들의 왕래에 뜸한 곳으로 특히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며, 실제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부르기 전까지 피고인이 옷을 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채다은 변호사는 또 “피고인이 공연음란 행위를 한 시간은 9분 정도이며, 등하교 시간에 학교 근처에서 학생들에게 중요 부위를 노출하는 등의 공연음란죄에 비해서는 죄질이 경하다”고 덧붙였다.

강제추행에 대해서도 채다은 변호사는 “피고인은 일탈하던 중 지나가던 피해자가 자신을 봐주면 좋겠다는 충동이 생겨 따라가, 손가락 하나로 피해자의 어깨를 톡톡 쳐서 자신의 벗은 몸을 보도록 한 것으로, 추행의 고의로 피해자의 신체를 접촉한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동은 신체가 접촉됐다는 점에서 강제추행 별죄가 성립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 이와 같은 행위는 피고인의 공연음란죄에 흡수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채다은 변호사는 “피고인이 공연음란 행위를 하는 동안 이를 본 사람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공소사실로 인한 피해자는 강제추행 피해자 1인인데,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고, 피해자는 처벌을 불원하는 합의서를 작성해줬다”며 “결국 피해자 전부와 용서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채다은 변호사는 “피고인은 성범죄 전과와 취업제한 명령이 확정되는 경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점, 아무런 전과가 없는 점, 지금까지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성실히 살아온 점, 재발방지를 위해 스스로 심리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있으며,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이수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점, 지인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항소심인 수원지방법원 제9형사부(재판장 이차웅 부장판사)는 최근 공연음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검사의 항소와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정상과 검사가 주장하는 양형사유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양형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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