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비가 내리는 심야에 도로에 누워 있던 사람을 보지 못해 승용차로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6월 오후 11시경 승용차로 경북 의성의 한 편도 2차에서 시속 70km의 속도로 진행해 가다가 도로 중간에 누워 있던 B씨를 승용차로 치었다.

그런데 A씨는 즉시 정차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해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A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인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은 2022년 6월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앞서 사고 장소를 지나간 C씨가 법정에서 ‘피해자가 밝은색 옷을 입고 있어 50m 전방에 누워 있는 피해자를 발견해 회피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 점, 다른 운전자들도 피해자를 발견하고 피해 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를 사전에 발견하고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비가 내리고 주변이 어두워 피고인이 외부환경에 맞추어 감속하고, 전방주시의무를 보다 세심하게 이행했을 경우 선행 차량들과 같이 도로에 누워 있는 피해자를 사전에 발견한 후 회피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이상 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A씨는 “사고 당시 비가 내리는 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인으로서는 도로에 누워 있던 피해자를 미리 발견하고 회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대구지방법원(대구지법)
대구지방법원(대구지법)

항소심인 대구지방법원 제3-1형사부(재판장 김경훈 부장판사)는 지난 5월 23일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고 장소는 자동차전용도로는 아니지만, 편도 2차로 왕복 4차로 도로로서 상당히 넓었고, 도로 가운데에는 중앙분리대까지 설치돼 있는 등으로 인해 사람의 횡단을 예상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며 “그런데 피해자는 도로의 중간인 1차로와 2차로에 걸쳐 누워 있어, 피고인으로서는 당시 그와 같은 이례적인 상황을 예견하기는 어려웠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고 발생 시간은 한밤이었고, 사고 장소에는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 않는 등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조명이 전혀 없었으며, 당시 비가 내리는 등의 기상 상황으로 인해 달빛 등 자연광도 없었고, 피해자의 의복은 상의는 밝은 회색이었으나 하의는 어두운 계통의 진한 남색이었다”며 “따라서 당시 피고인이 사고를 회피하기 충분한 거리에서 피해자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제한속도인 시속 64㎞(이 도로의 제한속도인 시속 80㎞에서 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 있어 20% 하향)를 초과해 시속 약 70㎞의 속도로 주행하기는 했으나, 초과한 속도가 시속 약 6㎞에 불과한데다가, 설령 피고인이 제한속도인 시속 64㎞를 준수했다고 하더라도 제동장치의 조작을 통한 사고회피 가능성은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는 보행 중이 아니라 누워 있었고, 또 하의가 어두운 색이었으므로, 가시거리가 37m 보다 더 짧았을 것임이 분명하다”며 “그리고 1차로 쪽에는 중앙분리대가, 2차로 쪽 진행 방향 앞부분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어 피해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과 사고 장소에 아무런 외부 조명이 없었음에 따라 운전자로서는 도로 밖 공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순간적인 조향장치 조작을 통해 피해자를 피해갈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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