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숨진 사건에서, 법원은 고인이 장기간 중증의 우울증 및 알코올의존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아오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진지하게 스스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에서 투신한 것으로 봐, 보험사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울산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02년 AIA생명보험과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보험계약은 피보험자(B)가 추락 등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재해)로 사망하는 경우 AIA생명보험은 재해사망보장특별약관에 따라 보험가입금액 2억원을 법정상속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특별약관 제12조(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고)에는 피보험자가 정신질환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2020년 3월 술을 마시고 밤 11시에 귀가한 B씨는 45분 뒤 주거지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통해 화단으로 추락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사망을 조사한 경찰은 고인이 자살을 암시한 정황이 있고,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사유로 내사 종결했다.

이에 유가족은 “고인은 만취 상태에서 베란다 창문에 한 다리를 걸친 채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균형을 잃고 추락해 사망한 것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다”며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다.

유가족은 “설령 고인이 고의로 스스로 투신한 것이라 하더라도, 고인은 당시 만취 상태였던 데다가 우울증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것이므로, 면책약관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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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법원 제15민사단독 환운서 부장판사는 최근 고인의 유가족이 AIA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피고 보험사는 원고들에게 2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황운서 부장판사는 “고인은 일부러 베란다 창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거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황운서 부장판사는 “고인의 신장은 173cm인데, 주거지 베란다 창문은 철제 난간의 높이가 바닥으로부터 122cm 가량으로, 일부러 난간을 넘지 않는 이상 추락할 수 없게 돼 있고 난간의 두께나 형상, 창문의 크기 등에 비춰 흡연을 하는 등 쉬거나 외부 풍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난간에 올라앉는 경우를 상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 “고인은 사고 5분 전 아내에게 ‘119부른고, 엄마나무 밑에어도’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바, 곧 자신의 신체와 관련한 사고가 발생할 것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자의 뜻은 단정하기 어려우나 사후 시신의 매장에 관한 당부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고인은 자녀에게도 “공부 열씸히 하고, 최선을 다해라,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사망 당일 경찰 조사에서 ‘고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고 놀라서 고인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고인이 베란다 난간에 걸쳐 앉아 있는 듯해서 고인을 부르며 다가가려 하는 순간 고인이 베란다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진술했다.

A씨는 “고인은 채무가 많고 평소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공황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어 투신을 선택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고인은 2013년과 2014년 우울증약 과다 복용으로 응급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2019년 7월 A씨는 “남편이 전화로 죽는다고 하는데, 남편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다”는 내용의 112신고를 해 남편이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고인은 2010년부터 사고일까지 10년 이상 알코올의존성증후군, 혼합형 불안우울장애, 우울에피소드 등의 진단을 받고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등 치료를 받아왔다.

황운서 부장판사는 “고인은 사고 당일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신경안정제를 추가로 처방받는 등 꾸준히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우울증 등의 증세가 호전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고인은 자주 술에 만취한 상태로 귀가했는데 사고 당일에도 만취한 상태로 밤에 부축을 받고 귀가했다”며 “의학적으로 고인이 지속적으로 복용해온 신경안정제는 술과 함께 복용 시 의식 저하나 혼탁 등이 유발돼 이상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황운서 부장판사는 “고인이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만취한 상태였고, 고인은 술에 취하지 않은 때에는 가족들과 애정이 깃든 말들이나 앞날에 대한 희망 섞인 말들을 주고받는 등 여느 가장 이상으로 다정하게 가족들을 대해 온 사실 등을 보태어 보면, 고인은 장기간 중증의 우울증 및 알코올의존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아오다가 사고 당일 알코올을 과다 섭취함으로 말미암아, 진지하게 스스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황운서 부장판사는 “따라서 이 사고는 보험계약 중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및 ‘피보험자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면책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러므로 에이아이에이(AIA)생명보험은 원고에게 보험금 2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A씨는 이번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소송대리인 한세영 변호사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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