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공단 변호사들에게 내린 징계는 징계사유가 없는 징계로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들이 집단행동을 하지 않을 의무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노조 위원장은 2019년 4월 8일 ‘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노동자 대회’ 개최를 신고했다. 그러자 법률구조공단 조상희 이사장은 “집회 참석은 불법”이라며 집단행동 금지를 지시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들은 4월 10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정부과천청사 인근에서 이루어진 대한법률구조공단 정상화를 위한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변호사들은 이사장의 해임 또는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제창했다.

이에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참여한 변호사들의 행위를 제1징계사유로 삼았다.

또한 법률구조공단 지부장들은 2019년 7월 10일로 정해진 ‘2019년도 상반기 직원근무평정’을 이행하지 않다가, 연장된 평정기간인 7월 23일 직원근무평정 업무를 마쳤다. 공단은 이 점도 제2징계사유로 삼았다.

조상희 이사장은 2019년 8월 16일 노동자 대회에 참석하고, 근무평정 업무를 지연한 변호사들에게 ‘불문경고’ 징계를 했다. 제1징계사유는 국가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A씨 등 변호사들은 재심 청구가 기각되자 2019년 11월 소송을 냈다. 변호사 15명은 “집회 참가를 금지하는 이사장 지시는 정당한 직무상 명령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1심과 2심 판단 엇갈려

1심인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제1민사부는 2020년 12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15명이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직무상 명령 위반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사장의 집회 참석 금지명령은 원고들의 직무 범위 내에 속하지 않는 사항에 관한 것으로 복종의무를 발생시키는 직무상 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무평정 지연’에 대한 징계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항소심인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2021년 7월 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국가공무원법상 경력직 공무원이므로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하며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제1징계사유에 대해 재판부는 법률구조법 제32조의 ‘공단의 임직원은 형법이나 그 밖의 법률에 따른 벌칙을 적용할 때에는 공무원으로 본다’라는 규정을 근거로, 원고들에게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이 적용됨을 전제로 집단행위를 하지 않아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따라서 집회에 참여한 원고들에 대한 제1징계사유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 행위의 금지) 제1항은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제2징계사유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당초 정한 근무평정기간 내에 근무평정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지연함으로써 피고의 근무평정업무를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제2징계사유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에서 정하는 노동운동과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다.

대법원
대법원

◆ 대법원,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 파기환송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4월 13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A씨 등 12명이 공단을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제1징계사유 관련 재판부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의무는 원칙적으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하는 책임을 부담하고 이를 위해 신분과 지위가 보장됨을 전제로 국가공무원에게 지우는 의무로, 위와 같은 정도의 책임과 신분 및 지위 보장을 받는 정도가 아닌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이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들을 포함한 피고 임직원의 지위나 직무 성격이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는 국가공무원과 같은 정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노동운동과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의무를 부담함을 전제로 집회에 참가한 것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이유로 한 징계는 징계사유 없이 징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2징계사유 관련 재판부는 “원고들이 직원근무평정을 지체해 피고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단정함으로써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세 차례 직원근무평정 기간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네 번째로 연장된 기간 내에는 직원근무평정을 모두 이행했던 점, 피고가 네 번째 직원근무평정 기간을 연장하면서 그동안 원고들의 직원근무평정의 지체를 양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점, 원고들이 세 차례 직원근무평정 기간을 준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직무 태만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직원근무평정 지체로 피고의 업무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을 제시했다.

◆ 이번 판결의 의미는?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과 같은 정도로 책임을 부담하고 신분ㆍ지위를 보장받는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이들에게 공무원의제조항(법률구조법 제32조)을 근거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에 정한 집단행위 금지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구체적 법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권리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인정함으로써, 공무원의제조항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의 지위 및 권리와 의무의 범위를 헌법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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