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가 수면장애로 힘들어하다가 입원병실의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망인은 불면으로 인한 우울장애가 악화돼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 사고로, 당시 자살밖에는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봐 보험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여)는 DB손해보험과 2020년 7월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A씨의 남편은 아내를 피공제자로 해 2011년 새마을금고중앙회와 공제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2020년 4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2곳의 병원에서 뇌실내출혈, 고혈압, 편마비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왜소한 체격의 A씨는 2021년 10월 9일 새벽에 입원병실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결국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새마을금고중앙회에 재해사망공제금 7000만원과 일반재해사망공제금 5000만원의 지급을 청구했다. 또한 DB손해보험에게도 상해사망보험금 1억원의 지급을 청구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의 공제계약과 DB손해보험의 보험계약은 A씨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공제금 또는 보험금 부지급 사유 즉 ‘면책사유’로 정하고 있다.

다만 이 사건 공제는 “A씨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사실이 증명된 경우”를, 이 보험계약은 “A씨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 지급 사유로 정하고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DB손해보험가 면책사유라며 공제금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유족은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소송에 임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13단독 이현종 판사는 지난 4월 7일 A씨의 유족이 새마을금고중앙와 DB손해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중앙회는 공제금을, DB손보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현종 판사는 “망인의 사망은 망인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라며 “망인은 정신질환 또는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자신을 해쳤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망인은 병원에 입원한 동안 한국형 간이정신검사를 여러 번 받았다”며 “망인은 사망 전에 상당한 정도의 우울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봤다.

예를 들어 2021년 1월 검사에서, 망인은 시간 지남력이 헷갈린다고 했고, 이날 기분이 ‘우울하고 가라앉고 눈물이 난다’고 적었으며, 주의 집중과 계산 항목을 수행할 때 시간이 지연되는 모습이 관찰됐고, 이후 실시된 검사에서도 같은 증세를 보였다.

A씨는 2021년 9월 8일부터 23일까지 수면장애 내지 불면을 호소해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으나, 사망 전날까지도 지속적인 수면장애 내지 불면을 겪었다.

A씨는 사망 며칠 전 담당의사에게 불면증상을 얘기했고, 의사는 치료제인 졸피신을 처방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 받기를 권했다.

A씨는 남편과의 전화 통화에서 ‘수면장애 때문에 매우 힘들고 죽을 지경’이라는 취지로 하소연했고, 다른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만연으로 인한 병원 출입 제한 등으로 A씨는 남편을 통해 투약 처방받는 외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지 못했다.

법원의 감정촉탁에 따라 망인의 병원 진료기록, 남편과의 전화통화 등을 검토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감정의)는 “망인이 사망 전에 심한 우울감, 불면, 무기력감 등이 20일 이상 지속됐고, 특히 사망 즈음에서는 정신운동지연과 집중력 결핍 등의 증상이 뚜렷했으며, 망인의 이런 증상이 2주일 이상 심한 수준으로 지속됐고, 망인의 주치의 등도 외진을 통해 망인의 증상을 치료하려고 한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이 사망 전에 불면이 동반된 양상의 중증 우울 에피소드를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감정의는 또한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이 동반하지 않아도, 심각한 수면장애 등과 같이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심한 우울증 증상이 동반하고, 이에 대한 뚜렷한 진료기록이 확인되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볼 수 있고, 망인은 여기에 가까운 경우”라고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이현종 판사는 “망인이 투약받은 수면장애 치료약 복용 등에 비춰, 망인이 사망 당시 우울장애를 겪었음은 분명하다”며 “게다가 망인은 뇌출혈 등으로 신체 일부 마비와 그로 인한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이 작지 않은 상태에서 2주일 또는 20일 가까이 수면장애 또는 불면을 겪으면서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이현종 판사는 “설상가상으로 전문의 외진을 받지 못했고, 처방받은 졸피신 복용만으로 수면장애 등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 즈음에는 우울장애가 더 악화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현종 판사는 “나아가 망인이 사망 당시 왜소하고 일부 마비된 몸으로, 입원병실에 있던 창문을 열고 좁은 공간을 통해 창문 밖으로 추락했음에도, 가족에게 유서나 작별인사 등을 남기지 않은 것은, 망안이 사망 당시 어떠한 의사결정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자살밖에는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현종 판사는 그러면서 “망인은 심한 우울장애 등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러 자신을 해쳤으므로, 망인의 사망은 공제계약 또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현종 판사는 새마을금고중앙회에 대해 공제계약에서 정한 재해사망공제금 7000만원과 일반재해사망공제금 5000만원을 인정해 총 1억 2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원고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DB손해보험사에 대해서도 보험계약에서 정한 상해사망보험금 1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원고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A씨의 유족이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상대로 1500만원, DB손해보험을 상대로 1500만원을 청구했기에, 이현종 판사는 “보험금 지급 의무 중 원도들이 청구하는 일부 범위에서 지급하라”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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