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관의 재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때는 ‘법관이 위법ㆍ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 입장를 두고 제기된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하지 않고 마무리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법관이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한 판결을 선고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모두 패소했다.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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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22년 2월 국가를 상대로 위 항소심 재판부 및 상고심 재판부 법관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그해 3월에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는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때는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A씨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영효 판사는 2022년 7월 “대법원의 해석은 다른 공무원과 비교해 법관의 직무행위에만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대해 위헌제청을 했다

서영효 판사는 “대법원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과 관련해 일반 공무원의 직무집행과 달리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에 대해서만 ‘위법ㆍ부당한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 위반’ 등의 가중된 요건이 요구된다고 일관되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국민의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을 지나치게 축소했다”며 “이러한 법률 해석은 일반 공무원의 직무집행과 비교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만 일종의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평등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3일 재판관 5(각하) 대 4 의견으로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의 기본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이다.

헌재의 다수 재판관의 법정의견은 “제청법원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경우 대법원이 해석을 통해 이 사건 법률조항에 없는 요건인 ‘위법ㆍ부당한 목적’ 또는 ‘현저한 기준 위반’ 등의 가중된 요건을 창설함으로써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이 구체화됐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이 법률조항은 법관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를 다른 공무원의 직무행위와 달리 취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대법원은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구체적 사안에서 해당 직무행위의 내용과 양태, 특수성 등을 고려해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정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 해당 여부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즉 대법원은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문제된 사안,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해 수사한 후 공소를 제기했으나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안, 법관의 오판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안 등 각각의 사안에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헌재는 “이처럼 제청법원이 위헌 여부를 다투는 내용은 대법원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인 고의 또는 과실 및 법령 위반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일 뿐, 이로써 새로운 성립요건이 가중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결국 제청법원이 다투는 내용은 규범 자체에 대한 위헌 주장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현행 규범통제제도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그렇다면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부적법하므로 각하한다”고 밝혔다.

◆ 이선애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이종석 재판관 반대의견

3명의 재판관들은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의 전체적 내용을 보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부분이 명확성 원칙과 평등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서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심판제청은 적법하므로 본안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아가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문형배 재판관의 의견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적법하므로 본안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도, “법관의 재판장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은 보다 엄격하게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문형배 재판관은 “법원의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이 규범은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을 다른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보다 엄격하게 봄으로써,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해 손해를 받은 국민과 다른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인해 손해를 받은 국민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고 봤다.

문형배 재판관은 “법관의 독립은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법부 내부의 간섭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적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포함한다”며 “그런데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넓게 인정하면 법관이 그것을 의식해 소신에 따른 판결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즉 법관이 장차 발생할지도 모를 국가배상책임 또는 국가에 의한 구상을 의식해 그것을 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판을 할 우려가 있고, 이는 실질적으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문형배 재판관은 “또한, 법관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배상요건을 판단하면서 법적 분쟁에 관해 이미 내려진 구속력 있는 결정이나 그 과정에 대해 다시 국가배상법의 관점에서 심사하게 되고, 이는 법적 안정성 또는 법적 평화를 깨뜨리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의 손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더라도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은 보다 엄격하게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형배 재판관은 “이상을 종합하면, 이 사건 규범이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로 인해 손해를 받은 국민과 다른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인해 손해를 받은 국민을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렇다면 이 사건 규범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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