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현대제철이 소속 근로자와 달리 자회사 근로자들의 당진공장 내 주차장 이용을 제한한 것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을 수용해 개선 의지를 보였다.

현대제철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할 예정이나, 회사 내 공간이 부족해 주차장 증설은 어렵고, 대신 점진적으로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차량 2부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했다’고 평가하며 환영했다. 다만 “현대제철이 2019년에도 이행계획을 제시한 후 지키지 않았던 결과를 반복하지 않고 이행계획을 충실히 실행하기를 바란다”고 짚어줬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에 따르면 충남 당진에 있는 현대제철 당진공장 자회사(A)의 근로자 37명은 국가인권위에 “현대제철이 자회사 직원임을 이유로 주차장 이용을 제한한다”며 진정을 냈다.

자회사(A) 진정인들은 “현대제철 근로자들과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고, 업무 내용이나 출퇴근 시간, 교대 시간 등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 근로자들의 주차 편의를 위해 자회사 직원들에게만 주차장 이용을 불허하거나, 특정 시간대(18시~06시)의 교대 근무자에게만 주차를 허용하는 등 현대제철 근로자들과 비교해 주차장 이용에 있어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인들은 “주차장 자리가 부족한 게 문제라면 차량 5부제를 실시하거나 현대제철과 자회사 직원 수에 비례해 주차장을 배정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현대제철은 자의적으로 현대제철 근로자에게 유리하도록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인들은 “현대제철이 대안으로 마련한 셔틀버스, 통근버스를 이용하면 출퇴근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출퇴근 시간이 아닌 근무 중 급한 일이 생겨서 조퇴할 때 및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용할 수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절도 등 범죄로부터 자산을 보호하고, 사업장 내 차량 증가에 따른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업무 차량 외 개인차량은 사외주차장에 주차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대제철도 2013년 가동하기 시작한 냉연공장의 경우에는 출퇴근 개인차량의 공장 내 출입을 전면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범죄나 교통사고 발생 위험 외에도 회사에는 총 1만 8296명의 근로자가 근무 중이어서 기본적으로 주차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필요한 주차공간은 8500여대로 추정되나 회사 내 주차공간은 5717대에 불과하다”며 “이에 한정된 주차공간을 현대제철과 자회사의 여건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이용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현대제철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정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공장 외곽 경계에 사외주차장 3177대를 마련했고, 사외주차장과 공장을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주거지와 공장을 연결하는 통근버스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당진공장에서 근무하는 현대제철 근로자는 6646명, 자회사 근로자는 3704명, 협력ㆍ외주사 근로자는 7946명 등 총 1만 8296명이 근무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자회사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 모회사가 자회사를 지배하거나 모회사가 자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등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와 같은 관계가 소속 근로자들 사이의 대우에도 차이를 가져와 자회사 근로자가 모회사 근로자에 비해 근로조건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게 될 수 있으므로 자회사 근로자는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한, 차량 출입증 발급에 따라 현대제철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되는데, 근로자에게 회사 주차장 이용은 고용환경과 직결되므로 고용영역에서의 불리한 대우에 대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는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의 차량 출입을 제한하면 현대제철 소속 근로자들의 주차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며 “그러나 사내 주차장에 개인 차량을 출입하게 할 것인지는 출입의 목적, 사업장 내 이동 필요성, 주차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근로자의 소속에 따라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그런데 현대제철은 소속 근로자들과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에게 주차장 이용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기준으로 분배했는지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몇 가지 차별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인권위는 “현대제철 기술직은 주간근무자인지 3교대 근무자인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상시 허용 출입증을 발급받았으나, 자회사(A) 근로자들은 같은 기술직임에도 주간근무자 중 일부만 상시 허용 출입증을 발급받았고, 제한된 구역만 이용할 수 있는 제3문 출입증만 발급받은 점, 현대제철 근로자들에게 발급된 상시 허용 출입증은 5066개로 전체 근로자 대비 약 76%인 반면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에게 발급된 상시 허용 출입증은 764개(제3문 전용 출입증 포함)로 전체 근로자 대비 약 2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현대제철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 순환버스 등이 대안으로 제공되고 있으나 노선 문제, 대기시간 등으로 사내 이동 및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제철은 절도 범죄 및 교통사고 발생 우려를 근거로 들고 있으나, 이는 자회사 근로자에게만 국한되는 점이 아니다”고 짚었다.

인권위는 “차량 요일제를 실시한다거나, 모회사 자회사 소속 인원수에 비례해 출입증을 발급하는 방법 등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 대안이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재와 같이 현대제철이 소속 근로자들과 자회사(A) 소속 근로자들 간에 주차장 이용에 차이를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9월 21일 현대제철 대표이사에게, 당진공장 내 주차장 운영 시 근로자의 소속 회사 등을 이유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할 예정이나, 회사 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주차장 증설은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그 대신 점진적으로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차량 2부제를 추진할 계획인데, 이는 노사 합의를 거쳐 현대제철사 소속 근로자에게 발급된 차량 출입증을 일부 회수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회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2023년 3월 21일 현대제철이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현대제철 내 공간이 포화상태인 점 ▲현대제철 소속 근로자들에게 주차장 이용 편의를 보장한 것은 노사 합의 사항인 점 ▲2부제는 인권위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식인 점 등을 고려해,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2부제를 실시하겠다는 현대제철의 이행계획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국가인권위는 2018년 11월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차량 출입증 발급 차별’ 진정사건에서 “차량 출입 허용 여부에 대한 판단은 그 출입의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야 하고, 근로자의 소속에 따라 구별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해 시정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2019년 4월 “사업장 내 주차 공간 확충과 함께 사내하도급 근로자 차량 출입을 확대해 궁극적으로 차별을 없애겠으며, 2021년까지 주차 공간 2000대 확충 후 소속 근로자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같은 차량 출입 기준을 적용하겠다”라고 권고 이행계획을 회신했으나, 이행하지 않은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6일 “현대제철이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한 점을 환영하며, 현대제철이 2019년과 같이 이행계획을 제시한 후 이를 지키지 않는 결과를 반복하지 않고 이행계획을 충실히 실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또한 자회사ㆍ협력사 등 근로자의 소속과 신분에 따른 고용영역에서의 차별금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0조에 따라 관련 내용을 공표한다”며 공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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