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현대해상화재보험사가 목을 매 숨진 망인의 유가족에게 자살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우울증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판단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안 주려고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보험금 지급은 물론 지연손해금에 더해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해상화재보험은 2016년 12월 A씨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A씨는 2020년 10월 거주지 안방 문에 목을 매는 방법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이 보험금을 신청하자, 현대해상화재보험은 거부하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현대해상은 “망인은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했고, 보험계약 약관 규정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 중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가족은 보험전문 한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 대표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맞섰다.

유가족은 “보험계약 약관에 의하면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고, 망인은 장기간 겪고 있던 우울증 및 불안장애 등을 원인으로 사고 당일 우울증, 심리 불안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 것이므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망인의 사망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
법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양우창 부장판사)는 3월 31일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자살한 A씨 유가족을 상대로 낸 보험금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또한 소송비용도 패소한 현대해상이 부담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우울증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요우울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에 관한 이학적 판단기준이 확립돼 있으므로, 사실심 법원으로서는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했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됐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1994년 우울증으로 최초 진단받은 이후 2001년 주요우울장애, 멜랑콜리아 양상(산후 발병 의심) 등으로 진단받고 입원치료를 받았다. 2019년에는 우울증,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4개월 동안 17회에 걸쳐 우울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다녔다. 2020년에는 대학병원에서 6회에 걸쳐 약물치료를 받았다.

재판부는 “특히 A씨는 2020년 6월부터 10월까지 우울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방문하는 빈도가 점차 늘어났고, 대학병원에서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증상과 함께 자살사고를 호소한 점에 비춰 주요우울장애가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망인의 자살과 망인이 앓고 있던 중증의 우울증 사이에 75% 이상의 관여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고, 망인과 같이 중증도 수준의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 심신미약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장애가 있을 것이라는 감정의견을 피력했다.

재판부는 “원고(현대해상화재보험)는 망인이 환청, 환각, 섬망 등의 정신병적 증상이 없었다는 이유로 ‘심신상실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심신상실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환청, 환각 등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돼 정상적인 사리분별이나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로 한정해 해석할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신체적, 정신적 상황, 우울증 발생 경위, 진행 경과, 자살 태양을 비롯해 망인의 나이와 성행, 주위 상황 등 여러 사정에 비춰 보면, 망인은 사망 1개월 전부터 우울증이 중증으로 급격히 진행돼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피고들에게 상속분 비율에 따라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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