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선거기간 동안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인쇄물 살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을 위반해 인쇄물을 살포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재판을 받던 중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본문 중 ‘인쇄물을 살포할 수 없다’는 등의 조항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성남지원은 2023년 1월 A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 법률 조항들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ㆍ도화의 배부ㆍ게시 등 금지) 제1항은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 당일까지의 기간 동안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ㆍ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ㆍ도화, 인쇄물이나 녹음ㆍ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ㆍ첩부ㆍ살포ㆍ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3월 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본문 중 ‘인쇄물 살포’에 관한 부분 등에 관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다만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2024년 5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을 결정했다.

이번 합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입법자는 심판대상조항을 2024년 5월 31일까지 개정해야 하고, 위 시한까지 개선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판대상조항은 2024년 6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할 뿐 아니라, 후보자에 비해 선거운동의 허용영역이 상대적으로 좁은 일반 유권자에 대하여는 더욱 광범위하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한 선거가 순차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장기간 동안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인쇄물의 살포행위를 금지ㆍ처벌하는 심판대상조항은 당초의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선거와 관련한 국민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상시적으로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헌재는 “인쇄물은 시설물 등과 비교해 보더라도 투입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경제력 차이로 인한 선거 기회 불균형의 문제가 크지 않고, 그러한 우려도 공직선거법상 선거비용 규제나 인쇄물의 종류 또는 금액 등을 제한하는 수단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또한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금지나 허위사실공표 금지 규정 등이 이미 존재함에 비추어 보면, 심판대상 조항이 선거의 과열로 인한 무분별한 흑색선전, 허위사실유포나 비방 등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인쇄물에 담긴 정보가 반드시 일방적ㆍ수동적으로 전달되거나 수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 매체의 특성만을 이유로 광범위한 규제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며 “이상과 같은 점들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은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인쇄물 살포 행위와 같은 정치적 표현을 장기간 동안 포괄적으로 금지ㆍ처벌하는 것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금지ㆍ처벌하고 있어, 그로 인해 유권자나 후보자가 받게 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매우 크다”며 “한편,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그보다 중대하다고 볼 수 없어,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 대해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인쇄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장기간 동안 포괄적으로 규제함으로써 후보자나 일반 유권자가 선거에서의 기회 균등이나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인쇄물의 살포행위와 같은 정치적 표현까지 모두 금지ㆍ처벌하는 것에 있다”며 “이와 관련해 정치적 표현 행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2024년 5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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