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원이 내리는 ‘가정폭력 피해자보호명령’ 제도 안에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 규정을 두지 않은 가정폭력처벌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했다.

이 사건은 가정폭력처벌법상 피해자보호명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최초의 사례다.

특히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재판관 4인이 합헌 의견이고, 재판관 5인이 헌법불합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의견이 다수이기는 하나, 헌법불합치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 6인에는 이르지 못해 가까스로 합헌이 선고됐다.

A씨는 아버지로부터 폭언과 욕설, 협박 등의 가정폭력범죄를 당하고 있다며 아버지를 상대로 법원에 A씨 직장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금지, 전자적 방식에 의한 접근금지, 우편에 의한 접근금지 등의 피해자보호명령을 해줄 것을 청구했다.

법원은 아버지에 대해 6개월 동안 A씨의 주거 및 직장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명하는 취지의 피해자보호명령을 했다.

이에 A씨는 아버지가 협박하고 비난하는 내용의 우편이나 소포를 자신의 직장 및 주거에 보내는 방법으로 협박하고 있으므로, 피해자보호명령에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항고했다.

A씨는 항고심 계속 중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 제55조의2 제1항에서 우편에 의한 접근금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9년 1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옛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5조의2(피해자보호명령 등) ①판사는 피해자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청구에 따라 결정으로 가정폭력행위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피해자보호명령을 할 수 있다.

1.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로부터의 퇴거 등 격리
2.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금지
3.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사업법 제2조 제1호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4. 친권자인 가정폭력행위자의 피해자에 대한 친권행사의 제한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헌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3일 재판관 4 대 5의 의견으로, 피해자보호명령에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옛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5조의2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9명 중 4명(유남석, 이선애, 이은애, 문형배)이 합헌, 5명(이석태,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이미선)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위헌ㆍ헌법불합치 정족수인 재판관 6명 이상에는 미치지 못해 합헌 결론이 났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피해자보호명령제도는 가정폭력행위자가 피해자와 시간적ㆍ공간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즉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을 때에 법원의 신속한 권리보호명령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입법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라며 “그런데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행위의 피해자와 우편을 이용한 접근행위의 피해자는 피해의 긴급성, 광범성, 신속한 조치의 필요성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합헌 의견은 “우편을 이용한 접근행위에 대해서는 법원의 가처분결정과 간접강제결정을 통해 비교적 신속하게 우편을 이용한 접근의 금지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접근행위가 형법상 협박죄 등에 해당할 경우 피해자는 고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봤다.

합헌 의견은 “또한 피해자보호명령제도에 대해서는 진술거부권고지나 동행영장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지 않고, 가정폭력행위자가 심리기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등 실무상 민사 또는 가사 신청사건과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짚었다.

합헌 의견 재판관들은 “이러한 피해자보호명령제도의 특성, 우편을 이용한 접근행위의 성질과 그 피해의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입법자가 심판대상 조항에서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피해자보호명령의 종류로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입법자의 재량을 벗어난 자의적인 입법으로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헌법불합치 의견(이석태,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종석 재판관, 이영진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이미선 재판관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5명의 재판관들은 “피해자보호명령은 피해자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한 방책을 마련하여 이를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며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피해자보호명령에서 제외하고 있는바,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과 비교해 볼 때 우편을 이용한 접근이 피해자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거나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을 덜 받는다거나 그러한 접근금지가 피해자 보호에 실효성이 없다거나 하는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5명의 재판관들은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피해자보호명령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와, 피해자보호명령을 위반한 경우 어떠한 제재수단을 선택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합헌의견과 같이 피해자보호명령을 위반하면 형사처벌되기 때문에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규정하지 않은 것이 국가형벌권 행사에 관한 입법재량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관들은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에 대해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재판관들은 “다만,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은 피해자보호명령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에 있고, 단순위헌결정을 하게 되면 법적 공백으로 인해 피해자보호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사라지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시했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재판소가 선고 즉시 법 조항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위헌과 달리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해당 조항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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