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채혈을 하도록 지시해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채혈을 실시했다면 진료보조행위가 아니라 ‘무면허 의료행위’로 의사에게 업무정지처분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부산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그런데 2019년 8월 모 전자민원창구 민원상담에 “A씨 의원에 갱년기검사를 받으려고 내원했는데 의사가 아닌 부원장이라는 직원이 상담과 피검사를 했다”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다.

관할 구청이 조사에 착수했고, “당시 A원장이 수술 중이어서 갱년기검사를 받으러 온 환자(B)에 대한 채혈행위를 간호조무사(C)가 했음”을 확인했다.

이에 구청은 2019년 8월 “A원장이 갱년기검사를 원하는 환자의 상태를 직접 살피고 검사시행에 관해 결정해야 하나, 수술 중이라는 이유로 환자 상담을 상담실장(간호조무사)에게 지시하고 혈액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여 상담실장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게 했다”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A원장을 고발했다.

부산지검은 2020년 9월 A원장의 위와 같은 의료법 위반 행위에 관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구청은 2020년 10월 A원장에게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업무정지 45일 처분을 했다. 구 의료법(2020년 12월 29일 개정) 제27조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A원장은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에 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22년 10월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A원장은 구청을 상대로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A원장은 “수술을 시행하던 중 간호조무사로부터 갱년기검사를 받으러 온 환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간호조무사에게 환자의 채혈을 지시했고, 간호조사무사가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의료행위를 했다”며 “간호조무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환자의 요양을 위한 간호와 진료의 보조를 수행할 수 있어, 이 사건 의료행위는 원장의 지도ㆍ감독하에 이루어진 진료의 보조행위이므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부산지법, 부산가정법원, 부산고법
부산지법, 부산가정법원, 부산고법

부산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금덕희 부장판사)는 최근 A원장이 관할 구청장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이 사건 의료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진료의 보조’는 의사가 주체가 되어 진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의 지시에 따라 종속적인 지위에서 조력하는 것을 가리키므로, 원고가 환자를 전혀 진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진료보조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환자는 의료행위 당시 의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원고 또는 간호조무사가 과거부터 환자를 오랜 기간 진료해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채혈행위는 통상 진료 등에 수반해 대상자의 신체 부위의 이상 유무 내지 건강상태를 의학적으로 확인ㆍ판단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며 “이러한 채혈행위는 주사기를 이용해 침습적인 방법으로 행해지고, 경우에 따라 감염이 생기거나 혈관 또는 피부조직이 손상되는 등 인체의 생명 또는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점에서, 체온 측정 등과 같이 별다른 전문지식이나 의료기술이 없더라도 대상자의 신체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고 행할 수 있는 행위와 구분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즉, 채혈행위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행위로서, 설령 그것이 검사나 질병 진단 등을 위한 부수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환자를 전혀 대면하지도 않은 채 지시만으로 가능한 업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A원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